열람석에서 손님 한 분이 동기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요즘 잘나간다고요.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이셨죠. "그런 건 별로 부럽지도 않아요." 조금 뒤에 같은 말을 한 번 더 하셨습니다.
두 번 말한 문장에는 대개 다른 게 숨어 있더군요. 니체라면 그걸 르상티망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은 프랑스어로 원한, 앙심을 뜻합니다. 니체는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도 이 말만은 프랑스어 그대로 가져다 썼죠.
그냥 화가 난 상태와는 다릅니다. 핵심은 해소되지 못한 채 속에서 곱씹어지는 원한이라는 점이죠. 되갚지 못하고,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래서 안에서 발효됩니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곳은 『도덕의 계보』 첫째 논문입니다.
니체의 구분은 이렇습니다. 한쪽 가치는 "나는 좋다"는 자기 긍정에서 시작합니다. 다른 쪽 가치는 "저것은 나쁘다"는 부정에서 시작하죠. 저쪽을 먼저 깎아내리고, 그 반대편에 자기를 세우는 방식입니다.
니체는 르상티망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낼 때 뒤쪽의 방식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원한이 그저 감정으로 머물지 않고,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정하는 저울까지 바꿔 버린다는 거죠.
거창한 얘기 같지만 생활 속에서 흔히 보입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하찮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 건 별로"가 너무 빨리 나오죠. 남의 성공에 이유를 붙이게 됩니다. 운이 좋았다, 줄을 잘 섰다 같은 말이요. 내가 고른 게 아니라 못 고른 것을 미덕이라 부르게 됩니다. 못 한 것을 안 한 것으로 바꿔 말하는 거죠.
이게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구나 들어가는 방입니다. 다만 거기 오래 머물면 제 저울이 남의 저울에 매이게 되겠죠.
원한은 남을 향해 활을 겨누지만, 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은 언제나 제 팔이다. 팔이 지치기 전에 활을 내려놓아라.
부정 대신 긍정의 문장을 써 보십시오. "저건 별로다"를 "나는 이게 좋다"로 바꿔 적는 겁니다. 부러움을 부러움이라고 부르십시오. 이름을 제대로 붙이면 발효가 멈춥니다. 앞서 부러움을 자주 느끼는 성격을 적었는데, 인정하는 쪽이 오히려 가볍더군요. 부러운 것 가운데 제가 정말 원하는 것만 남기십시오. 그건 원한이 아니라 방향이 됩니다.
그 손님은 나가시면서 웃으셨습니다. 사실 좀 부럽다고요. 그 말을 하고 나니 오히려 얼굴이 풀려 보이더군요.
원한은 남이 준 것 같지만 붙들고 있는 건 저입니다. 저는 남을 깎아내려 제 자리를 만들기보다, 제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세워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