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지나 보고서를 제출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제출하고 나서도 거래처가 메일을 열었는지 확인하려고 수신 확인 화면을 세 번 새로고침하셨다고요.
그 분은 의무감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출 뒤에도 남아 있던 그 마음은 의무감이 아니라 책임감입니다.
책임감과 의무감은 둘 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드는 감정입니다.
하기 싫어도 하고, 미루지 않고, 빠뜨리지 않습니다. 하는 모습이 같으니 섞어 부르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의무감은 정해진 일을 해야 하니까 하는 마음이고, 책임감은 그 일의 결과까지 내 것으로 여기는 마음입니다.
의무감은 바깥에서 정해진 일을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규칙이 있고, 기한이 있고, 해야 할 목록이 있습니다. 목록을 다 지우면 의무는 끝납니다. 보고서를 제출한 순간 의무감은 할 일을 다 한 셈이죠. 의무감에는 대개 "해야 하니까"라는 이유가 붙습니다.
의무감과 사명감의 차이도 전에 다뤘습니다. 거기서는 안 하면 혼나느냐로 갈랐고요.
책임감은 맡은 일의 결과를 내가 감당할 것으로 여기는 마음입니다.
제출로 끝나지 않습니다. 상대가 받았는지, 제대로 쓰였는지, 문제는 없는지까지 신경이 갑니다. 그래서 책임감은 일이 끝난 뒤에도 남습니다. 새로고침 세 번이 그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책임감은 의무감보다 오래 들고 다니는 감정이겠지요.
의무감이라면 목록을 지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끝났으면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책임감이라면 결과 중 내가 감당할 몫과 아닌 몫을 나누셔야 합니다. 상대가 메일을 언제 여는지는 내 몫이 아니니까요. 그 경계를 정하면 새로고침이 한 번으로 줄어듭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같습니다. 결과까지 들고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