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년째 맡고 계신 일을 설명하시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는 자세한데 왜 하는지는 한 번도 안 나오더군요.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이름이 하나로 정해집니다.
의무감과 사명감은 밖에서 보면 같습니다.
둘 다 오래 하고, 둘 다 빠지지 않고, 둘 다 성실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결과물로도 안 갈립니다.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안 했을 때 무엇이 오느냐입니다.
의무감은 안 하면 무슨 일이 생기기 때문에 하는 상태입니다.
혼나거나, 실망시키거나, 사람들이 곤란해집니다. 그래서 하는 동안 계속 그 결과가 뒤에서 밀고 있습니다. 밀려서 가는 겁니다.
의무감은 힘이 셉니다. 하기 싫어도 하게 만드니까요. 다만 오래 가면 사람이 마릅니다. 하는 내내 피하는 일이라 채워지는 게 없거든요.
사명감은 안 하면 그 일이 안 되는 것이 아쉬워서 하는 상태입니다.
내가 안 하면 이게 없어진다, 이건 누가 해야 하는 일이다. 앞에서 당기는 힘입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하는 동안 채워지는 게 있습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도 지칩니다. 다만 지치는 방식이 다릅니다. 몸은 힘든데 그만두고 싶지는 않은 상태겠지요.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내일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릅니까?
오 년을 하시고도 왜 하는지가 안 나오시면 앞쪽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하나 짚겠습니다. 세상일의 절반은 의무감으로 굴러갑니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걸 해내는 것이 어른의 몫이지요. 문제는 그걸 사명감이라고 부를 때 생깁니다. 그러면 왜 채워지지 않는지를 못 찾게 되니까요.
의무감이라고 정확히 부르면 채우는 자리를 다른 데서 찾게 됩니다. 그게 이 이름의 쓸모입니다.
사명감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지치실 때 쉬시면 됩니다.
의무감 쪽이면 할 일은 그 일을 좋아하려고 애쓰는 게 아닙니다. 기한과 조건을 정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할지, 무엇이 바뀌면 그만둘지요.
끝이 정해지면 같은 일도 견딜 만해집니다. 그리고 채워지는 것은 그 일 밖에서 만드셔야 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계속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만둘 때 먼저 떠오르는 것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