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다투고 화해한 형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명절 상에서 서로 반찬 접시를 건네주기는 하는데, 눈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야기해주신 분은 둘 사이에 아직 원한이 남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건 원한이 아니라 앙금입니다.
앙금과 원한은 둘 다 일이 끝난 뒤에도 풀리지 않고 남은 감정입니다.
겉으로는 지나간 일인데, 그 사람을 보면 무언가가 걸립니다. 남아 있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부르게 되죠.
앙금은 가라앉아 있는 불편함이고, 원한은 갚아야 할 것으로 남은 감정입니다.
앙금은 원래 물에 섞여 있던 것이 바닥에 가라앉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감정도 같습니다. 다툼은 끝났고 화해도 했습니다. 휘저어지지 않으면 겉은 맑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무언가가 깔려 있어서 조심하게 됩니다. 반찬은 건네되 눈은 피하는 것이 딱 그 모양이죠.
앙금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상대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냥 남아 있는 겁니다.
원한은 상대가 나에게 한 일을 되갚고 싶은 마음이 남은 것입니다.
원한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상대를 향해 있고,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계산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한은 화해와 같이 있기 어렵습니다. 화해를 했다면 그 계산을 내려놓았다는 뜻이니까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명절 상의 형제는 접시를 건넸습니다. 되갚을 마음이 있는 사람은 접시를 건네지 않겠지요.
앙금이라면 휘젓지 않고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라앉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더 굳거나 더 옅어집니다.
원한이라면 두는 것만으로는 옅어지지 않습니다. 갚을 것이 남아 있는 동안은 계속 그쪽을 보게 되니까요. 앙금을 원한이라고 부르면 없는 계산을 만들어 들고 다니게 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같습니다. 갚을 것이 있는지만 보시죠.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