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발표가 망한 원인이 자료를 늦게 넘긴 동료에게 있다고 회의록에 적으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뒤로 그 동료가 단톡방에 글을 올릴 때마다 읽지 않고 넘기게 됐다고요. 그 분은 그냥 그 동료 탓을 했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회의록에 적은 것은 탓이 맞습니다. 단톡방을 넘기는 손은 원망입니다.
원망과 탓은 둘 다 일이 잘못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두는 것입니다.
그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일을 떠올리면 그 사람이 함께 떠오릅니다. 책임이 향하는 곳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탓은 일이 잘못된 원인이 그쪽에 있다고 짚는 판단이고, 원망은 그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감정입니다.
탓은 머리에 있는 판단입니다.
자료가 늦게 와서 발표 준비가 부족했다. 이건 원인을 따진 것입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따져볼 수 있는 말이죠. 그래서 탓은 사실을 확인하면 정리됩니다. 원인이 맞다면 다음에는 자료 마감을 앞당기면 됩니다.
원망은 판단 위에 감정이 얹힌 것입니다.
원인을 짚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을 향한 미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원망은 그 일과 상관없는 자리에서도 나옵니다. 단톡방의 다른 글까지 넘기게 되는 것처럼요. 원망은 사실을 확인해도 잘 정리되지 않습니다. 원인이 아니라 사람에게 붙어 있으니까요.
원망과 미움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탓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탓은 일에 붙고, 원망은 사람에 붙습니다. 회의록과 단톡방 사이에서 이름이 바뀐 거겠지요.
탓이라면 원인을 정리해서 다음 일의 방식을 바꾸시면 됩니다.
원망이라면 방식을 바꿔도 남습니다. 그 사람에게 무엇이 서운했는지를 따로 보셔야 합니다. 둘을 나누면 회의록에 쓸 말과 마음에 남은 것이 따로 보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책임을 두는 것은 같습니다. 일에 붙었는지 사람에 붙었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