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이름이 나오자마자 표정이 먼저 바뀌셨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한참 뒤에야 나왔고, 그마저도 정리되지 않은 채였습니다.
순서가 뒤집혀 있으면 이름을 다시 봐야 합니다. 그건 원망이 아니라 미움 쪽에 가깝습니다.
원망은 이유를 데리고 다닙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안 했는지가 붙어 있습니다. 물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원망은 사건에 걸려 있으니까요.
미움은 이유를 두고 옵니다. 처음에는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은 떨어져 나가고 사람만 남습니다. 그래서 미움은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하려 들면 오히려 옹색해집니다.
이 구별이 왜 중요할까요. 다룰 수 있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건에는 끝이 있습니다. 사과를 받든 못 받든, 확인이 끝나면 그 항목은 닫힙니다. 항목이 닫히면 감정도 크기가 줄어들지요.
사람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존재하는 한 계속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미움은 오래갑니다. 오래가는 이유가 상처가 깊어서가 아니라 닫을 수 있는 항목이 남아 있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그 마음을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했습니까? 한 문장으로요.
두 번째 답이 나온다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미워질 만한 일도 세상에는 있으니까요. 다만 이름을 바꿔 붙이면 기대할 것이 달라집니다.
원망을 미움이라고 부르면 해결 가능한 것을 해결 불가능한 자리에 옮겨 놓게 됩니다. 항목 두어 개면 끝날 일을 사람 전체와 싸우는 일로 키우는 겁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미움을 원망이라고 부르면 계속 이유를 찾게 됩니다. 이미 이유가 떨어져 나간 감정에 이유를 붙이려니 없는 죄를 만들어 붙이게 되지요. 그러면 스스로도 자기가 옹졸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름이 틀려서 생긴 일인데 사람 됨됨이 문제로 넘어가는 겁니다.
원망 쪽이면 할 일은 항목을 적는 것입니다. 세 개를 넘기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세 개를 넘어가면 그건 항목이 아니라 감정을 항목처럼 늘어놓은 것입니다.
미움 쪽이면 할 일은 다릅니다. 화해도 아니고 용서도 아닙니다. 거리입니다. 미움은 이유가 없으므로 이유로 풀리지 않고, 거리로만 관리됩니다. 이건 옹졸함이 아니라 구조에 맞는 처리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무거워지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하나만 해보시죠. 무엇 때문인지 한 줄로 적어보십시오. 적히면 항목이고, 안 적히면 거리 문제입니다.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