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앞에서 표지만 보시다 그냥 꽂아두고 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뭘 보고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첫 장을 펴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여기부터 갈라야 합니다.
표지 문구와 띠지에 적힌 말은 사게 하려고 쓴 글이죠. 앞서 책 표지가 비슷해 보이는 이유를 적었는데, 잘 팔린 책을 닮게 만드는 게 그쪽 일입니다. 그러니 거기서는 그 책이 어떤 글인지가 안 나옵니다.
첫 장은 지은이가 쓴 글입니다. 여기부터가 그 책이죠.
맨 앞 한두 쪽. 첫 문단이 제일 많이 다듬은 자리입니다. 지은이가 가장 공들인 대목이라 그 사람 문장이 거기 다 있죠.
가운데 아무 데나 한 쪽. 이게 더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앞은 힘을 줬는데 뒤로 갈수록 풀리는 책이 있거든요. 가운데를 펴서 읽히면 끝까지 읽히는 책입니다.
마지막 장은 보지 마십시오. 소설이면 특히요.
몇 분 안에 볼 수 있는 것만 적겠습니다.
문장이 눈에 걸리는가. 한 문단 읽는 데 두 번 이상 되돌아가시면 안 맞는 겁니다. 내용이 어려운 것과 문장이 안 읽히는 건 다르죠. 나한테 말을 거는가. 설명만 죽 이어지는 글이 있고 묻는 글이 있습니다. 취향의 문제고요. 모르는 말이 몇 개나 나오는가. 한 쪽에 대여섯 개씩 나오면 그 분야를 처음 보시기에는 이른 책입니다. 앞서 한 분야 처음 공부할 때 순서를 적었는데, 그때 이 방법을 쓰시면 됩니다.
옮긴이의 말을 보십시오. 대개 맨 뒤에 있습니다.
거기 문장이 매끄러우면 본문도 대개 그렇습니다. 옮긴 사람의 글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거든요. 앞서 번역본마다 다른 건 어휘가 아니라 판단이라고 적었는데, 그 판단이 어떤 사람의 것인지가 여기서 보입니다.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천천히 시작하는 책이 있습니다. 첫 장이 심심한데 뒤로 갈수록 좋아지죠. 고전이나 긴 소설에 많습니다. 찾아 쓰는 책은 첫 장이 의미가 없습니다. 사전이나 실용서는 목차와 찾아보기를 보셔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방법을 안 사도 되는 책을 거르는 데 씁니다. 좋은 책을 고르는 것보다 그쪽이 확실하거든요.
표지는 파는 사람의 문장이고, 첫 장은 쓰는 사람의 문장이다.
다음에 오셔서는 서가 앞에 서서 책을 펴보시더군요.
세 권을 펴보시고 한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고르는 데 십 분도 안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