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에 넣어둔 물건을 석 달째 두고 매일 한 번씩 열어보신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신중한 편이라고 하시더군요.
신중한 사람도 석 달을 씁니다. 우유부단한 사람도 석 달을 씁니다. 그러니 걸린 시간으로는 두 이름을 가를 수 없습니다.
신중함은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면 결정합니다.
가격이 내려가기를, 후기가 몇 개 더 쌓이기를, 이번 달 지출이 정리되기를. 무엇을 기다리는지 물으면 바로 대답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면 실제로 삽니다.
우유부단함은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결정 자체를 미루고 있는 것이지 무언가를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물어보시면 됩니다. 무엇이 오면 정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답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건 기다리는 게 아니라 미루는 것이고, 미루는 일은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습니다.
우유부단함의 자리에는 대개 두려움이 있습니다. 잘못 고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결정을 안 하고 있는 동안에는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루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안 고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그 선택의 값은 조용히 나갑니다. 석 달 동안 매일 장바구니를 열어보는 시간이 그 값이겠지요.
신중함이 우유부단으로 넘어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기다리던 것이 왔는데도 안 정할 때입니다.
가격이 내려갔는데 또 안 삽니다. 후기가 쌓였는데 더 기다립니다. 이때 이름이 바뀝니다. 기준을 세워놓고 그 기준이 충족돼도 안 움직이면, 그건 기준이 아니라 핑계였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리는 것을 정할 때 언제까지를 같이 적으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기한이 없는 조건은 조건이 아니니까요.
신중함 쪽이면 할 일은 그대로 기다리시는 것뿐입니다. 조급해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우유부단 쪽이면 할 일은 결정을 잘하는 게 아닙니다. 못 고르는 이유를 한 줄로 적는 것이 먼저입니다. 돈이 아까운 건지, 필요 없다는 걸 이미 아는 건지, 틀릴까 봐 무서운 건지. 이 셋은 이름이 다르고 할 일도 다릅니다.
세 번째면 이건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입니다. 그럴 땐 물건을 고르는 연습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틀려보는 연습이 맞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래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댈 수 있느냐가 갈리는 자리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