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될 거라는 말을 들으신 뒤에 오히려 아무 말도 못 하게 되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말한 쪽은 위로하려 했을 겁니다. 그런데 도착한 것은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긍정과 낙관은 둘 다 어두운 쪽으로 기울지 않는 태도입니다.
둘 다 좋은 성질로 여겨지고, 둘 다 힘든 사람 옆에서 쓰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보는 시점이 다릅니다. 긍정은 지금을 보고 낙관은 앞을 봅니다.
긍정은 지금 상황에서 남아 있는 것을 찾는 일입니다.
이건 안 됐지만 저건 남아 있다, 여기까지는 왔다, 이 사람은 옆에 있다. 사실을 봅니다. 그래서 확인이 됩니다.
긍정은 지금 힘든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힘든 것도 사실이고 남은 것도 사실이니까요. 둘 다 놓고 봅니다.
낙관은 앞으로 좋아질 거라고 보는 태도입니다.
지금 근거가 없어도 됩니다. 그래서 낙관은 힘이 셉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도 쓸 수 있으니까요.
다만 낙관은 확인이 안 됩니다. 그리고 듣는 쪽에서는 지금 힘든 것이 지나가는 것으로 처리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막히는 겁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다 잘될 거라는 문장에는 지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듣는 쪽은 자기가 있는 자리가 통째로 넘어간 것처럼 느끼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낙관은 결론입니다. 잘될 거라고 하면 그 얘기는 끝난 게 됩니다. 그러면 아직 못 한 말이 있어도 꺼내기가 어려워지죠. 반박하는 게 되니까요.
긍정은 결론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것을 짚는 것뿐이라 말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같은 밝은 태도인데 한쪽은 열고 한쪽은 닫습니다.
앞일을 말하고 싶으시면 지금을 먼저 짚으시면 됩니다. 힘든 것을 한 줄 인정하고 나서 붙이는 낙관은 도착합니다.
그리고 잘될 거라는 말이 위로가 안 되셨다면, 그건 마음이 삐뚤어져서가 아닙니다. 지금 자리를 아무도 안 봐준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럴 때는 상대에게 지금 이 부분이 힘들다고 짚어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대화가 다시 열립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밝게 본 것은 같습니다. 지금이 그 말 안에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