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같은 쪽을 펼쳐 놓고 앉아 계신 손님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말씀하시더군요. 동료가 자기를 두고 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었다고요.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 책이 안 읽힌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없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앞에서 했다면 대답이라도 했을 텐데, 뒤에서 나온 말엔 대꾸할 기회가 없죠. 믿었던 사람의 말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깊이 박히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봐 두렵습니다. 한 사람의 말이 여러 사람의 생각처럼 느껴지죠. 앞서 미움받을까 불안한 마음을 적었는데, 험담은 그 불안을 가장 크게 건드립니다. 곱씹게 됩니다. 앞서 싫은 말이 오래 남는 이유를 적었는데, 험담은 특히 그렇죠.
하나 기억해 둘 게 있습니다. 전해 들은 말은 한 번 걸러진 말이라는 거죠. 말한 사람의 뜻과 전한 사람의 말투가 섞여 있습니다. 앞서 남 얘기 옮기게 되는 심리를 다룬 글이 있는데, 말은 옮겨질수록 모양이 바뀌더군요.
그리고 험담은 대개 말하는 사람의 사정을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날의 기분, 그 사람의 불만, 그 사람의 시선이요.
앞서 독사에 물린 상처 뜻을 적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독사에게 물리고도 이렇게 말했죠. 네 독을 도로 가져가라. 너는 내게 독을 줄 만큼 넉넉하지 않다.
험담도 그런 독일 겁니다. 받은 독을 삼켜 오래 품을 수도 있지만, 그 독이 저를 해치지 못하게 돌려보낼 수도 있죠. 앞서 르상티망을 적었는데, 험담에 원한으로 답하면 그 독이 제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등 뒤에서 날아온 돌은 던진 자의 손을 보여 줄 뿐이다. 그 돌을 주워 들고 다닐지는 네가 정한다.
들은 말을 그대로 적어 보십시오. 전한 사람의 해석을 빼고요. 생각보다 작은 말일 수 있습니다. 확인할 수 있으면 확인하십시오. 정말 그렇게 말했는지, 무슨 뜻이었는지요. 다만 따지려는 게 아니라 알기 위해서요. 쓸 만한 게 있으면 챙기십시오. 험담 속에도 들을 만한 지적이 섞여 있을 때가 있죠. 저를 아는 사람을 떠올리십시오. 한 사람의 말보다 저를 오래 본 사람들의 눈이 더 정확합니다.
일주일 뒤 그 손님이 다시 오셨습니다. 그 동료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고요. 그 말은 일이 너무 힘들던 날 홧김에 한 말이었다며, 동료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제야 책이 다시 넘어갔다고요.
등 뒤의 말은 앞으로도 들려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말을 주워 들고 다니지 않고, 쓸 만한 것만 챙긴 뒤 나머지는 그 사람에게 돌려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