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관 무렵 불이 반쯤 꺼진 서가 사이를 지나던 손님이 휴대폰 불빛을 켜셨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셨죠. 이 나이에 어두운 게 무섭다니요. 밤의 서고를 지키는 저로서는 그 말이 꽤 반가웠습니다.
어릴 때 무서웠던 것들이 어른이 되면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죠.
어둠. 불 꺼진 방, 긴 복도 같은 것들이요. 벌레. 작은 벌레 한 마리에도 몸이 먼저 움츠러들더군요. 높은 곳. 다리가 후들거리는 감각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큰 소리, 깊은 물. 저마다 하나쯤은 있죠.
앞서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은 마음을 적었는데, 이런 두려움이 남아 있으면 그 마음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다 큰 사람이 이런 걸 무서워해도 되나 싶어서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건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래전 몸이 위험을 피하려고 익힌 감각이 남아 있는 것일 수 있죠. 앞서 신체는 큰 이성 뜻을 적었는데, 몸은 머리보다 먼저 위험을 알아채려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아직 무언가를 깊이 느낄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사람보다, 작은 것에도 떨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더 섬세하게 느끼는지도 모르죠.
앞서 낙타 사자 아이를 적었습니다. 니체는 정신의 가장 높은 모습을 아이라고 불렀죠. 아이는 무서운 것 앞에서 떨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 앞에서 설레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남은 두려움은 어쩌면 그 아이의 감각이 아직 살아 있다는 표시일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자는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는다. 떨 줄 아는 마음이 설렐 줄도 안다.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저 어두운 거 좀 무서워요"라고 말하면 대개 웃으며 불을 켜 주죠. 작은 준비를 하십시오. 그 손님의 휴대폰 불빛처럼요. 대비가 있으면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무리해서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생활을 막을 만큼 크다면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아 이야기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건 서재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 손님께 다음부터는 폐관 전에 말씀하시면 불을 조금 더 켜 두겠다고 했습니다. 손님이 웃으며 그러시더군요. 사서님은 이 어두운 데서 매일 밤 안 무서우세요? 솔직히 가끔은 저도 무섭습니다.
무서운 것은 앞으로도 남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두려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불빛 하나를 켜 두며 그 곁에서 제 밤을 계속 지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