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 자료를 찾으러 자주 오시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남의 부탁은 척척 도와주셨죠. 그런데 자기 자격증 공부 책은 석 달째 연장만 하고 계셨습니다. 하루는 웃으며 말씀하셨죠. 남 일은 바로 하는데 제 일만 늘 밀려요.
마감이 분명합니다. 남이 부탁한 일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미루기 어렵죠. 제 일은 저만 알아서 쉽게 밀립니다. 칭찬이 바로 옵니다. 남을 도우면 고맙다는 말이 금방 돌아오죠. 제 일은 결과가 늦게 보입니다. 거절이 어렵습니다. 앞서 부탁을 못 거절하는 성격을 다룬 글이 있는데, 부탁이 쌓이면 제 시간이 사라지더군요. 제 일이 덜 중요해 보입니다. 남의 일은 급하고, 제 일은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죠.
앞서 나와의 약속 못 지키는 버릇을 적었는데, 이 버릇은 그 마음과 아주 가깝습니다.
제 일이 쌓여 무거워집니다. 미룬 만큼 시작하기 어려워지죠. 앞서 멈췄다 다시 시작 못 하는 마음을 적었는데, 오래 미룬 일일수록 문턱이 높아집니다. 남을 돕는 것도 지칩니다. 제 일이 밀려 있으니 남을 도우면서도 마음 한쪽이 불편하죠.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서 너희는 너희 자신에게서 달아나 이웃에게로 간다고 꼬집은 적이 있습니다. 제 일을 마주하기 싫어서 남의 일로 도망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물론 남을 돕는 마음이 다 도망은 아닙니다. 다만 늘 남의 일만 먼저라면, 한 번쯤 물어볼 만하죠. 나는 지금 돕고 있는가, 아니면 내 일에서 달아나고 있는가.
남의 짐을 먼저 드는 손이 늘 제 짐을 내려놓는다면, 그 손은 친절한 것이 아니라 제 길에서 비켜서고 있는 것이다.
제 일을 남의 부탁처럼 적어 두십시오. "○○이 부탁함, ○일까지." 그 ○○에 제 이름을 넣는 겁니다. 하루 첫 시간은 제 일에 쓰십시오. 부탁이 들어오기 전에요. 부탁을 받으면 바로 답하지 마십시오. "언제까지 필요해?"라고 먼저 물어 순서를 정하는 거죠. 도움을 나누십시오. 모든 부탁을 혼자 맡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손님은 그날부터 출근 전 삼십 분을 자격증 공부에 쓰셨다고 합니다. 동료 부탁은 그다음에요. 두 달 뒤 합격했다며 그 책을 반납하러 오셨죠. 이번엔 연장 없이요.
남을 돕는 마음은 귀합니다. 그래도 저는 제 일도 누군가의 부탁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그 부탁을 한 저 자신에게도 순서를 내주며 제 길을 지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