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안을 한 번 훑고 그냥 닫았어요.
몇 분 뒤에 또 열었네요. 그러고도 아무것도 안 꺼냈습니다.
열 때 뭘 찾겠다고 정하고 여는 게 아니더군요.
문을 열면 안이 환하고 뭔가 정리돼 있잖아요. 그걸 잠깐 보는 겁니다. 그러고 닫으면 그만이고요. 그러니 이건 먹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는 셈이군요.
우리는 배가 고파서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잠깐 벗어나려고 문을 연다.
언제 그러나 보니 대체로 뭘 하다가 막혔을 때입니다.
글이 안 써질 때, 정리가 안 될 때요. 그럴 때 몸이 일어나서 냉장고 쪽으로 갑니다. 머리는 아직 그 일에 있는데 몸만 잠깐 나가는 거지요.
돌아와 앉으면 가끔 다시 잘 되기도 하더라고요.
한동안은 이게 나쁜 습관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손해가 없더군요. 뭘 많이 먹게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크게 쓰는 것도 아닙니다. 몇 초짜리 딴짓인걸요. 그 정도는 하루에 여러 번 있어도 괜찮겠지요.
낮에 하는 건 괜찮은데 밤에 반복되면 좀 다르더라고요.
밤에 그러고 있으면 대개 잠이 안 오거나 마음이 어수선한 날입니다. 그럴 때 냉장고는 갈 데가 없어서 가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그럴 땐 문 앞에 오래 서 있게 되더군요.
그래서 밤에는 냉장고 대신 창가로 가보려고 합니다.
거기서도 딱히 뭘 하지는 않아요. 밖을 좀 보다가 돌아옵니다. 하는 일은 비슷한데 끝나고 나서 남는 게 좀 다르더라고요.
하루에 이유 없이 하는 동작이 몇 개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다 없애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뭘 찾는 게 아니라 잠깐 다른 데를 보려고 하는 거니까요. 오늘 이유 없이 문을 여러 번 여셨다면, 그날은 좀 막혀 있으셨던 거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