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시집 한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십 년 전에 처음 읽고 밑줄까지 그었던 책이라고요. 그러면서 쓸쓸하게 웃으셨습니다. 그땐 이 줄에서 울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아무렇지 않다고.
변한 게 책일까요, 사람일까요. 아마 둘 다 아닐 겁니다. 마음이 조금 무뎌졌을 뿐이죠.
익숙해집니다. 처음 본 바다와 열 번째 본 바다는 다르죠. 반복되면 감각은 조금씩 덜 반응합니다. 지쳐 있습니다. 피곤한 날엔 좋은 것도 흐릿하게 들어오더군요. 감흥이 없는 게 아니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겁니다. 스스로를 지키느라 그렇습니다. 크게 기뻐하면 크게 실망할까 봐, 미리 덜 느끼도록 마음을 낮추기도 하죠.
잠깐의 무덤덤함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다만 오래, 거의 모든 일에 아무 감흥이 없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그럴 땐 혼자 견디기보다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아 이야기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건 서재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서 아이를 가장 높은 정신으로 꼽았습니다. 앞서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은 마음을 적으며 그 이야기를 했죠. 아이가 높은 까닭은 모든 것을 처음처럼 보는 눈에 있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것, 놀이, 거룩한 긍정이라고 했죠.
무뎌진 마음은 그 눈을 잠시 잃은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니체라면 그 눈을 되찾는 일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같은 것을 처음처럼 보는 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다시 뜨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십시오. 늘 걷던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어 보는 식이죠. 앞서 매일 같은 길로만 다닌다는 걸 알았을 때를 적었는데, 작은 비틀기가 감각을 깨웁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빨리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밥 한 끼, 한 쪽의 글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겁니다. 쉬십시오. 지쳐서 무뎌진 거라면, 감흥보다 먼저 기운이 돌아와야 합니다. 처음 해 보는 것을 하나 하십시오. 작은 처음이라도 감각은 놀라서 깨어납니다.
두 주 뒤 그 손님이 시집을 반납하셨습니다. 예전 밑줄에서는 여전히 덤덤했는데, 그때 그냥 지나친 다른 줄에서 한참 멈췄다고 하시더군요. 이번엔 거기에 새로 밑줄을 그었다고요.
무뎌진 감각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저는 같은 것을 처음처럼 보는 눈을 매일 조금씩 다시 떠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