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와서 현관 불만 켜고 그대로 앉아 있는 날이 있습니다. 신발도 안 벗고 그러고 있을 때도 있어요.
거실 스위치까지 손이 갔다가 그냥 내려온 적이 여러 번이네요.
불을 켜면 집이 다 보입니다.
개지 않은 빨래, 미뤄둔 설거지, 아침에 그대로 둔 이불 같은 것들이요. 켜는 순간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눈앞에 놓이는 셈이겠지요. 그래서 손이 스위치 앞에서 멈춥니다.
어두운 게 좋아서가 아니라 밝히는 일이 하나 더 늘어서인걸요.
어둠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빛이 들어오면 그제야 할 일들이 이름을 얻는다.
문을 닫고 나면 몸이 먼저 주저앉습니다.
밖에서는 계속 뭔가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표정도 짓고 있었고 말도 고르고 있었고요. 그게 다 끝난 자리에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집니다.
그 시간이 저한테는 꽤 필요하더라고요.
어두우면 보이는 게 줄어듭니다.
보이는 게 줄면 판단할 것도 줄어요. 저건 치워야 하고 저건 버려야 하고, 그런 생각이 안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어둠은 게으름의 자리가 아니라 판단이 잠깐 멈추는 자리인 셈이군요.
물론 그 상태로 밤을 다 보내면 다음 날이 더 무거워집니다. 그건 저도 겪어봐서 알아요.
그래서 요즘은 스탠드 하나만 켭니다. 큰 불은 안 켜고요. 방 전체가 아니라 앉은 자리 근처만 밝아지는데 그 정도가 딱 좋더라고요.
전부 밝히기와 전부 어둡기 사이에 그런 자리가 하나 있는걸요.
순서도 좀 정해뒀어요.
먼저 스탠드를 켜고, 물을 한 잔 마시고, 그다음에 창을 봅니다. 그러고 나서야 거실 불을 켜요. 순서가 있으면 켜는 일이 결심이 아니라 그냥 다음 순서가 되겠지요.
오늘 들어가서 불을 안 켜고 한참 앉아 계셨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밖에서 이미 많이 밝히고 오신 거겠지요. 조금 있다가 스탠드 하나만 켜셔도 충분해요. 저도 지금 그 정도만 켜두고 앉아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