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료실에서 그림책을 고르던 손님이 계셨습니다. 조카 선물이라고요. 두 권을 놓고 한참 고민하시더니 웃으셨습니다. 제가 이걸 골라줄 나이가 됐다는 게 이상하다고.
나이는 찼는데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지 않다는 말, 서가 사이에서 생각보다 자주 듣습니다.
어릴 때 본 어른은 다 아는 사람이었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흔들리지 않고, 틀리지 않는 사람이요.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면 저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자주 흔들리고, 곧잘 틀립니다. 그래서 어릴 적 그림과 지금의 저를 대 보면 늘 모자라 보이더군요.
어쩌면 그 그림이 처음부터 틀렸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때 본 어른들도 속으로는 지금의 저처럼 헤매고 있었겠죠.
회의에서 의견을 말할 때, 계약서에 서명할 때, 누군가를 위로할 때. 어른의 일을 하면서 어른인 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은 무능의 증거라기보다 스스로를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표시에 가깝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역할만 하는 사람은 흉내라는 말조차 떠올리지 않을 테니까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첫 가르침은 정신이 거치는 세 가지 변화 이야기입니다.
낙타.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지고 사막으로 가는 정신이죠. 해야 할 것들을 짊어집니다. 사자. 거기서 "나는 원한다"고 말하며 짐을 지우던 명령과 싸웁니다. 아이. 마지막엔 아이가 됩니다. 새로 시작하는 것,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 거룩한 긍정이라고 하죠.
눈여겨볼 건 끝이 어른이 아니라 아이라는 점입니다. 니체에게 가장 멀리 간 정신은 모든 걸 다 아는 모습이 아니라, 새로 만들 줄 아는 모습이었습니다.
짐을 다 졌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짐을 내려놓고 제 놀이를 시작할 때 비로소 제 이름을 얻는다.
어른의 목록을 적어 보십시오. 제가 생각하는 어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요. 의외로 이미 하고 있는 게 섞여 있습니다. 남의 목록은 지우십시오. 부모나 사회가 건넨 기준 중 제가 동의하지 않는 건 빼도 됩니다. 하나만 새로 시작해 보십시오. 아이 단계의 말대로, 되어 간다는 건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서 드러나니까요.
그 손님은 결국 두 권 다 빌리셨습니다. 한 권은 조카 주고, 한 권은 자기가 읽겠다고요. 어릴 때 못 읽은 책이라고 하시더군요.
어른이 되었다는 확신은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모르는 채로 하루치 몫을 해내고, 가끔은 아이처럼 새것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쌓인 날들이 제가 만드는 어른의 모습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