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다가 누가 물었어요. 고향이 어디예요?
다들 하나씩 대답했지요. 저는 손가락으로 살았던 동네를 세어봤어요.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만 다섯 군데였네요. 결국 여기저기요, 하고 웃었어요.
아버지 일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한 동네에 정이 들 만하면 짐을 쌌지요. 학교도 몇 번 옮겼고요. 전학 첫날 교탁 앞에 서서 자기소개를 하던 기억이 여러 번 있어요. 그 긴장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네요.
명절이면 다들 고향에 간다고 하지요.
그런데 저는 그런 데가 없어요. 부모님 집은 있지만 거기서 자란 건 아니거든요. 어릴 적 친구들도 다 흩어졌고요.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고향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쓸쓸함을 조용히 안고 산다.
고향이 분명한 친구가 부러울 때가 있어요.
친구는 명절마다 같은 골목, 같은 슈퍼, 같은 놀이터를 보러 간대요. 거기 가면 어릴 때 자기가 그대로 있는 것 같다고요.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게 참 든든해 보였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한테도 조각들이 있어요.
한 동네의 개울, 다른 동네의 문방구, 또 다른 동네의 커다란 은행나무 같은 거요. 다 다른 곳이지만 하나씩 제 안에 남아 있지요. 고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셈이군요.
요즘은 고향을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해요.
태어난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요. 지금 사는 이 동네, 비 오는 날이면 앉아 있는 이 창가가 저한테는 그런 곳이에요. 여기서는 짐을 싸지 않아도 되니까요.
돌아갈 동네가 없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오래 머물고 싶은 자리가 하나 있으면 그게 고향이겠지요. 지금 앉은 창가를 그렇게 불러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