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카페 테이블 위에 새 다이어리가 하나둘 놓이기 시작해요. 아직 한참 남은 내년 다이어리를 벌써 사서 오시는 거예요. 카운터에서 보면 연말은 달력보다 다이어리로 먼저 와요.
어느 저녁에 손님 한 분이 다이어리 세 권을 테이블에 늘어놓으셨어요. 셋 다 아직 비닐도 안 뜯은 새것이었어요.
한 시간 동안 표지만 번갈아 만져 보셨어요. 하나를 들었다 놨다, 또 다른 걸 들었다 놨다요. 결국 하나도 안 뜯고 가방에 다 넣어 가셨어요. 나가시면서 "고르는 게 제일 재밌어요" 하셨어요. 그 말에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이어리 고르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비슷해요.
첫 번째 말을 제일 많이 들어요. 웃으면서 하시지만 표정엔 기대가 보여요. 다이어리를 사는 건 내년의 나를 한 번 믿어 보는 일 같아요.
새해가 오기도 전에 첫 장을 쓰시는 분도 계세요. 이름을 쓰고, 연락처를 쓰고, 맨 앞 장에 한 줄을 적으세요.
한 손님은 첫 장에 저희 가게 이름을 적으셨대요. 내년에도 여기 자주 오겠다는 다짐이래요. 그 얘기를 듣고 저는 내년에도 꼭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님들 얘기를 모아 보면 이래요.
첫째,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를 고르세요. 집에만 두면 결국 안 펴게 된대요.
둘째, 쓰고 싶은 칸만 있는 걸 고르세요. 칸이 많으면 빈칸이 부담이 돼요.
셋째, 다 못 채워도 괜찮다고 미리 정해 두세요. 반만 써도 그 반은 남아요.
새 다이어리는 내년의 나에게 건네는 첫 인사예요. 빈칸이 남아도 그 인사는 이미 전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