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대에 책을 한 권씩 천천히 내려놓던 손님이 계셨습니다. 밤새 만든 발표 자료가 있었는데, 회의에서 아무도 한마디를 안 했다고요. 그러니까 꼭 안 한 일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한 일인데 안 한 일 같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이만큼 정확하게 말하기도 어렵죠.
사람은 남의 눈을 통해 저를 확인하며 자랍니다. 아이 때부터 잘했다는 말로 무엇이 좋은지 배우죠. 그러니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커져서 남이 봐주지 않으면 한 일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겠죠. 일의 무게가 제 손에서 남의 눈으로 옮겨 간 상태입니다.
몇 가지가 겹칩니다.
결과가 제 안에서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끝났다는 도장을 남에게 맡겨 둔 거죠. 기준이 밖에 있습니다. 얼마나 잘했는지 제 눈으로 재 본 적이 없으니, 남의 침묵이 곧 점수가 됩니다. 피로가 섞여 있습니다. 지친 날엔 작은 무반응도 크게 들리더군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시장의 파리들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의 소음과 박수에 휘둘리지 말라는 거죠. 차라투스트라는 그런 곳을 피해 제 고독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건 사람을 멀리하라는 말이 아닐 겁니다. 박수 소리로 제 일을 재지 말라는 말에 가깝겠죠.
박수는 공기를 떨게 할 뿐 너를 세우지 않는다. 네가 한 일을 네가 먼저 보아라. 그것이 첫 번째 증인이다.
끝낸 일을 제 말로 한 줄 적어 두십시오. "무엇을 했고, 어디가 좋았다." 제 도장을 먼저 찍는 겁니다. 알아봐 줄 사람을 하나만 정해 두십시오.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 일을 제대로 볼 줄 아는 한 사람이면 충분하죠. 원하는 말을 직접 청해 보십시오. "이거 어땠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기다리기만 하면 침묵이 길어집니다.
그 손님은 그날 한 권을 새로 빌려 가셨습니다. 며칠 뒤 오셔서 그러시더군요. 동료 한 사람한테 직접 물어봤는데, 자료가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그냥 말을 안 했을 뿐이었다고.
남의 인정은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습니다. 저는 제 일을 제가 먼저 알아봐 주는 쪽을 고르겠습니다. 그게 흔들리지 않는 바닥을 제 손으로 만드는 방법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