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인물이 나와. 남장을 하거나 평범한 옷을 입고 강호를 떠도는 사람. 근데 말투가 너무 곱고,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몰라.
알고 보니 공주야. 궁이 답답해서 몰래 빠져나온 거지.
이건 무협에서 꽤 오래 쓰여온 인물이야. 왜 자꾸 나올까.
황실 사람의 특징은 세상을 모른다는 거야. 궁 안에서만 살았으니까.
객잔에서 값 치르는 법도 몰라. 무협 대목 중에 공주가 국수 한 그릇 값으로 은덩이를 내미는 장면이 있어. 객잔에서 그 대목을 읽어줬더니 손님들이 다 웃었어. 은표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무림인은 큰돈을 어떻게 들고 다녔냐고. 공주는 그런 걸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이 인물한테 정이 가. 나도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 아무것도 몰랐거든.
공주 이야기의 재미는 강호가 그 사람을 바꾸는 과정이야.
처음엔 어리숙하고 거만해. 근데 길에서 사기를 당하고, 위험에 빠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러면서 궁 밖의 세상을 알게 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돈이 왜 귀한지, 의리가 뭔지.
그러니까 공주 이야기는 성장 이야기야. 무공이 아니라 사람이 크는.
그리고 공주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판이 커져.
강호 일이 갑자기 황실 일이 돼. 금의위 동창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공주가 사라졌으면 그런 기관이 찾으러 나서. 강호에 나라는 왜 안 끼어드냐고 했지만, 공주가 끼어 있으면 나라가 안 끼어들 수가 없어.
우리 객잔에도 한 번 말투가 유난히 고운 손님이 왔어. 손님들이 다 힐끔거렸지. 무협을 너무 읽은 거야.
그 손님은 국 한 그릇 먹고 동전으로 정확히 계산하고 갔어. 은덩이는 안 내밀었어. 다들 좀 아쉬워했지.
신분 숨기고 강호에 섞인 인물 중에 기억나는 사람 있으면 들려줘. 그 사람 첫 객잔 장면이 어땠는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