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회사 상사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늘 사람을 깎아내리는 사람이라고요. 한참 말씀하시다 갑자기 멈추셨습니다. "근데 요즘 제 말투가 그 사람이랑 똑같아졌어요." 스스로 놀란 얼굴이었죠.
니체의 한 문장이 그 순간을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선악의 저편』 제4장, 짧은 잠언들을 모은 부분에 있습니다. 전문은 두 문장이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오래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앞서 니체 명언 출처를 적을 때 원전이 분명한 문장으로 소개했는데, 오늘은 그 뜻을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무언가와 오래 싸우면 싸우는 방식이 상대를 닮아 갑니다. 그 손님처럼요. 깎아내리는 사람과 싸우다 보면 저도 깎아내리는 말을 쓰게 되죠. 이기려면 상대의 무기를 들어야 할 것 같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 싸움이 끝나도 그 무기는 손에 남습니다. 괴물을 이겼는데, 그 자리에 제가 괴물로 서 있는 거죠.
두 번째 문장은 더 서늘합니다. 어둡고 깊은 것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것도 저를 들여다본다는 거죠.
미움, 원한, 절망 같은 것들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것들이 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제가 보이고 있는 겁니다. 앞서 르상티망을 적었는데, 원한이 저울을 뒤집는 것도 이렇게 시작되더군요.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싸움이 끝난 뒤 네가 누구로 남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읽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니체는 싸움 자체를 피하라고 하지 않았죠. 다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싸우는 동안 제 방식을 지키십시오. 상대의 무기 대신 제 무기를 쓰는 겁니다. 들여다보는 시간을 정하십시오. 어두운 것을 살펴야 할 때도 있지만, 너무 오래 머물면 그것이 제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가끔 거울을 보십시오. 그 손님처럼 "요즘 내가 누굴 닮아 가나"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멈출 수 있죠.
그 손님은 그 문장을 메모장에 적어 가셨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 말이 거칠어지려 할 때마다 꺼내 보겠다고요. 몇 주 뒤 오셔서, 그래도 덜 닮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싸워야 할 것은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저는 싸우는 동안에도 제 말투와 제 방식을 지키며, 싸움이 끝난 자리에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서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