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두신 분이 송별회 날 기분이 심란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박수를 받았고 꽃다발도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 꽃다발을 옆자리에 올려두고 한참 보고만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그 감정은 심란함보다 착잡함에 가깝습니다.
착잡함과 심란함은 둘 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 가지 말로 설명이 안 되고, 무엇을 해도 손에 잘 안 잡힙니다. 그러니 둘을 섞어 쓰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런데 어수선한 이유가 다릅니다.
착잡함은 여러 감정이 한데 섞인 것이고, 심란함은 마음 하나가 가라앉지 않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착잡함은 서로 다른 감정이 동시에 들어와 있을 때 옵니다.
송별회가 딱 그런 자리입니다. 고마움이 있고, 섭섭함이 있고, 홀가분함도 있습니다. 하나만 있으면 이름을 붙이기 쉬운데, 셋이 한 번에 있으니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게 되죠.
그래서 착잡함은 대개 이미 일어난 일 뒤에 옵니다. 일은 끝났는데 그 일에 대한 감정이 여러 갈래로 남아 있는 겁니다.
심란함은 섞인 것이 아니라 가라앉지 않는 것입니다.
결과가 안 나온 일, 결정을 미뤄둔 일, 내일 있을 일 같은 것이 마음을 계속 건드립니다. 감정의 종류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자꾸 흔드는 것이죠.
그래서 심란함은 앞에 놓인 일에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일이 정해지면 대개 잦아듭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송별회 날의 그 분은 나눠보니 셋이 나왔습니다. 고마움, 섭섭함, 홀가분함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셋 다 틀린 감정은 아니지요.
착잡함은 섞인 것을 풀어서 하나씩 부르면 됩니다. 이름이 셋이 되면 각각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심란함은 흔드는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 찾으면 됩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가 보이면 어수선함의 자리가 좁아지니까요.
같은 어수선함인데 풀어야 할 것과 찾아야 할 것이 다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어수선한 것은 같습니다. 나눠지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