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에서 한 문장을 틀리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고는 그 프로젝트를 통째로 망쳤다고 하시더군요.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이었습니다. 크기가 안 맞게 이름이 붙어 있었던 겁니다.
실수와 실패는 둘 다 원하던 대로 안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의 기분은 비슷합니다. 아찔하고, 얼굴이 뜨거워지고, 되돌리고 싶어집니다. 이 감각으로는 두 이름이 안 갈립니다.
갈리는 것은 다시 할 기회가 남았느냐입니다.
실수는 과정 안에서 한 번 어긋난 것입니다.
숫자를 잘못 적고, 이름을 잘못 부르고, 한 문장을 틀립니다. 그 지점만 어긋났고 나머지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고칠 수 있고, 다음 회차가 있습니다.
실수는 크기가 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큰 실수도 실수입니다. 남아 있는 기회가 이름을 정합니다.
실패는 그 시도 자체가 끝난 상태입니다.
시험이 끝났고, 계약이 무산됐고, 지원이 안 됐습니다. 그 판에서는 더 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판을 새로 열어야 합니다.
실패도 사는 일에 늘 있습니다. 문제는 실수를 실패라고 부를 때 생깁니다.
사람은 잘못한 직후에 크기를 크게 잡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 한 지점이 시야를 다 덮으니까요. 그래서 한 문장이 프로젝트 전체가 되고, 하루가 인생 전체가 됩니다. 이건 판단력의 문제가 아니라 가까이 있으면 커 보이는 일이겠지요.
크기를 크게 잡으면 할 일이 사라집니다. 실패에는 고칠 자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며칠씩 무겁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게 됩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발표에서 한 문장을 틀렸는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면 기회는 남아 있는 겁니다. 그러면 실수입니다.
실수 쪽이면 할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긋난 지점 하나를 고치거나, 다음 회차에 다르게 하거나요. 끝이 있고 짧습니다.
실패 쪽이면 할 일이 다릅니다. 고칠 자리가 없으니 무엇을 가지고 나올지 정하는 것이 할 일입니다. 그 판에서 배운 한 줄을 적어두시면 됩니다. 다음 판에서 쓸 것이니까요.
두 이름을 갈라두면 무거운 시간이 줄어듭니다. 대개는 앞쪽인데 뒤쪽 이름을 붙이고 계시거든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잘못된 것은 같습니다. 다음 회차가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