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를 하시는데 날짜와 경로를 정확히 대시더군요. 그런데 그때 무엇을 느끼셨느냐고 여쭤보니 대답이 안 나왔습니다.
기억은 완전한데 추억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두 말은 같은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먼저 오해를 걷겠습니다. 또렷하면 기억이고 흐릿하면 추억인 게 아닙니다.
아주 또렷한 추억이 있고 흐릿한 기억도 있습니다. 사실 추억 쪽이 더 또렷할 때가 많죠.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그 장면에 감정이 붙어 있느냐입니다.
기억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입니다.
몇 시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사실이 저장된 것이고, 필요할 때 꺼내 씁니다. 감정이 안 붙어 있어도 됩니다. 오히려 안 붙어 있어야 정확할 때도 있고요.
추억은 그때 내가 어땠는지가 같이 저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꺼내면 그 감정이 다시 옵니다. 좋았던 것이면 좋아지고 아팠던 것이면 다시 아픕니다. 사실은 흐려져도 그 감정은 안 흐려집니다.
그러니까 추억은 정보가 아니라 다시 겪는 일입니다.
떠올린 다음에 몸이 어떤지 보시면 됩니다.
여행 사진을 보면서 아무 느낌이 없으신 적 있으시죠. 그건 사진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 장면이 기억으로만 저장된 것이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감정은 그 당시에 붙습니다. 나중에 못 붙입니다.
그 자리에서 계속 다음을 계획하고 있으면, 몸은 거기 있어도 감정은 미래에 가 있습니다. 그러면 장면만 저장되고 감정은 저장이 안 됩니다. 여행을 다녀와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사진을 많이 찍는 것도 비슷합니다. 담는 동안에는 보는 일을 못 하니까요.
기억이 부족하시면 적으시면 됩니다. 그건 기록의 문제라 도구로 해결됩니다.
추억이 부족하시면 도구로는 안 됩니다. 할 일은 그 자리에서 한 번 멈추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한 문장만 속으로 적어두시면 됩니다. 그 한 문장이 감정을 붙이는 못이 됩니다.
좋은 자리에 더 자주 가는 것보다 이게 확실합니다. 자리를 늘려도 안 붙으면 기억만 늘어나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남은 게 없다고 느끼시면 기억이 모자란 게 아닙니다. 감정이 안 붙은 것이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