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는데 며칠째 빈 느낌이 든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야 비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그렇지 않은 쪽도 있습니다.
상실감과 공허함은 둘 다 안이 빈 것 같은 상태입니다.
둘 다 의욕이 안 나고, 둘 다 좋은 것도 밋밋합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허탈과 허무도 이 근처였죠. 그러면 이 둘은 무엇이 갈릴까요?
무엇이 빠졌는지 댈 수 있느냐입니다.
상실감은 있던 것이 없어졌을 때 오는 감정입니다.
사람이 떠났거나, 자리가 없어졌거나, 오래 하던 것을 그만뒀습니다. 그래서 상실감에는 이름이 붙습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댈 수 있죠.
상실감은 시간이 걸리지만 방향이 있습니다. 잃은 자리를 알면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공허함은 특별히 잃은 것이 없는데도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못 댑니다. 설명이 안 되니 남에게 말하기도 어렵고요.
공허함은 대개 채워지던 것이 오래 안 채워졌을 때 옵니다. 갑자기 빠진 게 아니라 조금씩 줄어든 거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최근에 잃으신 것을 하나 대실 수 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는데 비어 있으시면 뒤쪽이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공허함은 이유가 없는데 사람은 이유를 찾습니다. 그래서 없는 것을 붙이게 되죠. 그 일 때문인가, 그 사람 때문인가 하고요.
붙인 이유는 대개 틀립니다. 그러면 엉뚱한 것을 정리하게 되고, 정리해도 안 채워집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억측과 비슷한 구조겠지요.
상실감 쪽이면 할 일은 그 자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적어두시면 애도할 대상이 생깁니다.
공허함 쪽이면 할 일은 이유를 찾는 게 아닙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줄어든 것을 세어보는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 하던 일, 좋아하던 것이요.
대개 하나가 조용히 빠져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방향이 생기더군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비어 있는 것은 같습니다. 잃은 것을 댈 수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