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것을 두 시간 넘게 고르기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 보고 껐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그걸 심심해서라고 하시더군요.
심심한 사람은 두 시간을 고르지 않습니다. 아무거나 틀고 봅니다. 두 시간을 고른다는 건 무엇을 틀어도 안 될 것 같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건 지루함이 아니라 공허함입니다.
지루함은 채우면 사라집니다. 할 게 없어서 생긴 것이니 할 것이 생기면 끝납니다. 원인은 바깥에 있습니다.
공허함은 채워도 남습니다. 할 것을 넣어도 그 시간이 나에게 붙지 않습니다. 원인은 바깥이 아니라 연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분의 기준은 감정의 세기가 아닙니다. 얼마나 크게 비었느냐를 재는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채워본 뒤에 남느냐 안 남느냐, 그것 하나입니다.
복잡하게 볼 일이 아닙니다. 삼십 분짜리를 하나 넣어보시면 됩니다. 산책이든 설거지든 통화든 상관없습니다.
한 번이면 갈립니다. 여러 번 해보실 필요가 있을까요.
이름을 잘못 붙이면 정반대의 처치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허한데 지루함으로 부르면 계속 채우게 됩니다. 약속을 늘리고, 영상을 늘리고, 일을 늘립니다. 그런데 채워도 안 사라지는 것이니 채울수록 지칩니다. 지치면 더 크게 채우려 하고요. 이게 저녁마다 무언가를 계속 틀어놓으면서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의 정체입니다.
반대로 지루한데 공허함으로 부르면 너무 크게 답하려 하게 됩니다. 삶의 방향을 다시 짜야 할 것 같고, 큰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밖에 나가 삼십 분만 걸으면 끝날 일인데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방법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이름을 하나 더 정확하게 붙이겠습니다.
공허함은 대개 "할 게 없다"가 아니라 "한 게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쪽입니다. 하루를 다 썼는데 그게 무엇에도 얹히지 않은 느낌. 그래서 공허함은 시간이 남는 사람보다 시간이 모자란 사람에게서 더 자주 봅니다. 바쁜데 텅 빈다는 말이 모순처럼 들리지만 모순이 아닙니다. 아마 짐작 가시는 저녁이 하나쯤 있으시겠지요.
여기까지 오면 최소한 엉뚱한 데 힘을 쓰지는 않게 됩니다. 채우는 데 쓰던 힘을 아끼는 것만으로도 다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저녁이 비어 있었다면 삼십 분만 넣어보시죠. 끝나고 남는지 안 남는지.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 어느 쪽인지 애매하시면 같이 짚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