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다음 날, 손님 한 분이 얼굴을 감싸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모임에서 작가 이름을 완전히 잘못 말했다고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자기 전에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고 하시더군요.
제 실수는 제가 가장 크게 봅니다. 남들에게는 스쳐 간 한 장면인데, 저에게는 확대된 장면으로 남죠.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됩니다. 앞서 싫은 말이 오래 남는 이유를 적었는데, 곱씹기는 창피한 장면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더군요. 남이 저를 그렇게 기억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 실수 하나로 제가 정해질 것 같죠. 밤에 더 커집니다. 앞서 밤에 혼자 있으면 생각이 커지는 이유를 다룬 글이 있는데, 창피한 장면은 꼭 자기 전에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실수를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다들 자기 실수를 떠올리느라 바쁘니까요. 그 손님의 독서모임 사람들도 아마 그날 밤 자기가 한 말을 곱씹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대개 저 혼자입니다.
앞서 헤어진 사람 소식을 찾아보는 버릇을 적으며 니체의 잊는 힘을 이야기했습니다.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잊는다는 걸 약함이 아니라 적극적인 힘이라고 했죠. 다 소화하지 못하고 계속 되새김질하는 사람은 다음 일을 할 수 없다고요.
창피한 장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장면에서 배울 게 있다면 하나만 챙기고, 나머지는 잊어도 되는 거죠.
넘어진 장면을 백 번 다시 보는 자는 백 번 넘어진다. 한 번 보고 일어선 자만이 다음 걸음을 뗀다.
남의 실수를 떠올려 보십시오. 지난주 누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기억나시나요. 대개 기억나지 않죠. 남들도 제 실수를 그렇게 잊습니다. 배울 것 하나만 남기십시오. 그 손님이라면 "다음엔 이름을 확인하자." 그거면 충분합니다. 웃으며 꺼내 보십시오. 창피한 일을 먼저 농담처럼 말하면 무게가 줄어들더군요. 다만 저를 깎는 농담이 되지 않게요. 떠오르면 다른 장면으로 옮기십시오. 그날 잘했던 것 하나를 같이 떠올리는 겁니다.
다음 모임 날 그 손님이 그 작가의 책을 들고 오셨습니다. 이번엔 이름 외웠어요, 하시면서요.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먼저 꺼냈더니 다들 웃으며 자기 실수담을 하나씩 내놓더라고 하시더군요.
창피한 장면은 또 생길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장면을 백 번 다시 보지 않고, 배울 것 하나만 챙긴 뒤 놓아주며 다음 걸음을 제 쪽으로 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