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좋은 점을 열 가지 적어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사랑이 맞느냐고 물으시더군요.
목록은 길었는데 그 목록으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개수는 이름을 정하지 않으니까요.
먼저 흔한 오해를 걷어야 합니다. 호감이 커지면 사랑이 되는 게 아닙니다.
아주 강한 호감이 있고 아주 조용한 사랑이 있습니다. 심장이 뛰는 정도로 재면 앞쪽이 더 클 때도 많죠. 그러니 세기는 기준이 못 됩니다.
갈리는 것은 상대가 달라져도 남느냐입니다.
호감은 상대의 무엇 때문에 생깁니다.
말을 잘해서, 잘 웃어서, 일을 잘해서, 나를 편하게 해줘서. 그 무엇이 있으면 생기고 없어지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호감은 목록으로 설명이 됩니다. 열 가지를 적으실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겠지요.
이건 얕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대개 호감에서 시작합니다.
사랑은 조건이 빠져도 남습니다.
그 사람이 아파서 잘 웃지 못하게 돼도, 일이 잘 안 풀려 초라해져도 남습니다. 목록에 적힌 게 하나씩 지워져도 남는 것이 있으면 그쪽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목록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이 짧아집니다.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유가 사람보다 작아져서입니다.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목록에 적은 것 중 가장 큰 하나를 지워보십시오.
잔인한 질문 같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 조건을 잃습니다.
여기서 하나 짚겠습니다. 호감을 낮춰 부르려는 게 아닙니다.
호감은 정확하고 정직한 감정입니다. 좋은 점 때문에 좋은 것이 뭐가 문제겠습니까. 문제는 호감을 사랑이라고 부를 때 생깁니다. 사랑에 걸어도 되는 것을 호감에 걸게 되니까요.
같이 살 결정, 오래 갈 약속, 다른 것을 포기하는 선택. 이런 것들은 조건이 빠져도 남는 쪽에만 겁니다.
호감 쪽이면 할 일은 그냥 즐기시는 것입니다. 좋은 점을 더 보시면 됩니다. 이름을 서둘러 붙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 쪽이면 할 일은 목록을 지우는 게 아니라 목록 밖에 무엇이 남는지 한 줄로 적어보는 것입니다. 그 한 줄이 안 나오면 아직 이름이 이른 것일 수 있겠지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목록의 길이는 이름을 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를 지워보는 것으로 갈립니다.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