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을지 물으면 저는 아무거나 좋다고 합니다. 어디로 갈지도 정해주시면 따라간다고 하고요.
그런데 상대가 고르고 나면 속으로 다른 걸 떠올릴 때가 있더라고요.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뭘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군요. 떠오르는 게 있는데 말을 안 한 것뿐이었어요.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않는 쪽을 고른 겁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다만 그 대가는 나중에 조용히 청구된다.
왜 안 꺼냈나 생각해보면 틀리기 싫어서였겠지요.
제가 고른 데가 별로면 그 자리가 저 때문에 별로가 되잖아요. 그게 싫은 겁니다. 남이 고르면 별로여도 그냥 오늘 운이 없었던 게 되고요. 결과는 같은데 책임이 다른 셈이군요.
고르기 싫었던 게 아니라 책임지기 싫었던 거였습니다.
넘기면 편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상대는 매번 정해야 하니까 지칩니다. 몇 번 그러다 보면 저 사람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게 되고요. 넘긴 자리에 제 몫만 넘어가는 게 아니라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같이 넘어가는걸요.
큰맘 먹고 제가 정해서 갔던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별로였어요. 예상대로 마음이 좀 불편했네요. 그래도 그날 상대가 그러더군요. 여기 어떻게 알았냐고, 다음에 또 오자고요. 별로였던 건 저만 그렇게 느낀 거였습니다.
제가 미리 그려둔 최악은 대개 안 옵니다.
그 뒤로 저는 작은 것부터 말해보려고 합니다.
전부 정하겠다는 게 아니라 두 개 중에 하나만 고르는 정도로요. 그 정도면 틀려도 크지 않으니까요. 하다 보면 말하는 게 조금씩 덜 무거워지더라고요.
오늘도 아무거나 좋다고 하셨다면, 그게 정말 아무거나였는지 한 번만 물어보셔도 좋겠네요.
떠오른 게 있었으면 다음엔 그것만 말해보셔도 됩니다. 틀려도 괜찮은걸요. 저도 아직 잘 안 되지만 요즘은 하나씩은 말하고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