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서운했던 일이 있었네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때 사정을 건너 들었네요.
듣고 나서 예전 메시지를 다시 열어봤어요. 같은 문장인데 다르게 읽히더라고요.
그때 저는 그 사람이 저를 가볍게 본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정해놓고 나니까 그 뒤에 오는 모든 게 그 증거처럼 보이더군요. 답이 짧으면 짧아서, 길면 형식적이라서요. 한번 방향을 정하면 뒤집기가 참 어려운걸요.
우리는 사실을 모아 판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먼저 세우고 사실을 골라 붙인다.
사정을 듣고 나서 바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더라고요.
그때 제가 힘들었던 건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이해와 서운함이 같이 있는 상태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둘 중 하나를 지워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다만 서운함의 모양은 좀 바뀌었네요.
전에는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는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그 시기에 서로가 그럴 만했다는 이야기가 됐어요. 같은 일인데 주어가 달라진 셈이군요.
이 일을 겪고 나서 저를 좀 돌아봤는걸요.
저도 힘들 때는 사정을 잘 말 안 해요. 말하면 변명 같고, 말할 힘도 없고요. 그러면 상대는 제가 무성의하다고 읽겠지요. 제가 그 사람한테 한 걸 저도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판단하기 전에 한 칸을 비워두는 편이네요.
내가 모르는 사정이 하나쯤 있을 수 있다고 두는 정도예요. 확인할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지만 그 칸을 비워두면 결론이 조금 늦게 굳더라고요.
이미 지나간 일에 사정을 알게 되면 좀 허탈합니다. 그때 알았으면 달랐을 텐데 싶고요.
그래도 늦게 안 것도 안 거지요.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얼마 전에 그 사람한테 짧게 안부를 보냈습니다. 답이 왔고, 그걸로 충분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