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알아들었는데 웃었다며 민망해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거짓말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게 거짓말 쪽은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 웃는 건 대개 판단이 아닙니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쪽이죠.
여럿이 웃으면 그 자리의 공기가 한쪽으로 기웁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튀고요. 그 튀는 걸 피하는 반응이 웃음으로 나옵니다. 생각할 틈이 없는 속도로요.
그러니 하기로 정하고 한 게 아닙니다. 여기를 먼저 아셔야 죄책감이 좀 덜어집니다.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자리를 부드럽게 합니다. 말한 사람이 머쓱해지는 걸 막아주죠. 그건 작지 않은 일입니다.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 시간을 법니다. 웃는 동안 앞뒤를 맞춰보게 되거든요.
문제는 이게 쌓였을 때 생깁니다.
민망하다고 하셨던 건 아마 이쪽일 겁니다.
동의한 것으로 읽힙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말에 따라 웃으면 나도 같은 편이 되죠. 앞서 웃어넘기는 버릇을 적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편한데 나중에 남는 게 이겁니다. 못 알아들은 게 넘어갑니다. 웃고 나면 되묻기가 어려워집니다. 모르는 채로 지나가죠. 내가 안 웃긴 걸 나도 모르게 됩니다. 계속 따라 웃다 보면 내가 뭘 재미있어하는지가 흐려집니다.
전부 안 웃으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건 되지도 않고요.
못 알아들었을 때는 웃고 나서 물으십시오. 웃은 건 그대로 두시고 무슨 얘기냐고 한마디 붙이시면 됩니다. 그러면 모르는 채로 안 넘어가죠. 누구를 깎는 말에는 웃음을 짧게 끊으십시오. 안 웃는 건 어렵지만 짧게 끝내는 건 됩니다. 그 차이를 사람들은 의외로 알아챕니다. 나중에 혼자 한 번 짚어보십시오. 오늘 웃은 것 중에 정말 웃긴 게 뭐였는지요. 앞서 지나간 말을 곱씹는 버릇을 적었는데, 이건 곱씹기와 달리 남는 게 있습니다.
따라 웃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반사다. 다만 반사 뒤에 무엇을 할지는 고를 수 있다.
그다음부터는 웃고 나서 물어보신다고 하시더군요.
웃음은 그대로 두고 되묻는 말 하나만 붙이신 겁니다. 버릇을 고치신 게 아니라 뒤에 한 칸을 더 놓으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