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석에서 『차라투스트라』를 읽던 손님이 고개를 드셨습니다. 한 대목을 가리키며 웃으시더군요. "이거 나 아닌가요?" 마지막 인간이 나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웃음에 반은 농담, 반은 진심이 섞여 있었죠.
이 인물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 나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시장 사람들에게 위버멘쉬를 이야기했다가 비웃음만 사자, 이번엔 가장 경멸스러운 자를 보여 주겠다며 꺼내는 사람이죠.
앞서 위버멘쉬 뜻을 적었는데, 마지막 인간은 그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차라투스트라의 묘사는 이렇습니다.
마지막 인간은 묻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냐, 창조가 무엇이냐, 동경이 무엇이냐, 별이 무엇이냐. 그러고는 눈을 깜빡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 그리고 또 눈을 깜빡이죠. 살기 힘든 곳은 떠났고, 다툼은 피하고, 조금씩 즐기고, 몸을 아낍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고, 다르게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 무리 밖으로 물러난다고 차라투스트라는 비꼽니다.
그런데 군중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우리에게 그 마지막 인간을 달라!" 그들은 그 모습이 좋다고 외치죠.
마지막 인간은 악당이 아닙니다. 남을 해치지도 않죠. 바로 그래서 위험합니다.
동경이 없습니다.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꺼져 있죠. 작은 편안함을 행복이라 부릅니다. 그 이상은 피곤한 일이 됩니다. 모두가 같아지길 바랍니다. 튀는 것은 불편하니까요.
차라투스트라가 걱정한 건 사람들이 더는 자기를 넘어설 별을 품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별이 무엇이냐고 묻고 눈을 깜빡이는 순간, 그 사람의 위는 닫히는 거죠.
자기 안에 아직 혼돈이 남아 있는지 물어라. 별을 낳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 손님의 말이 반쯤 맞을 겁니다. 지친 날 우리는 누구나 마지막 인간처럼 삽니다. 쉬고, 피하고, 편한 것을 고르죠. 그건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거 나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 있다는 것. 진짜 마지막 인간은 그 물음 앞에서 그저 눈을 깜빡일 테니까요. 물을 수 있다면 아직 별을 잃지 않은 겁니다.
그 손님은 그 대목을 한 번 더 읽으시고는 메모장에 한 줄을 적으셨습니다. 무엇을 적으셨는지는 여쭙지 않았죠.
편안한 하루는 소중합니다. 그래도 저는 그 하루 한쪽에 작은 별 하나는 남겨 두겠습니다. 동경할 것을 스스로 정하는 일, 그건 누가 대신해 주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