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제목이 하나도 생각 안 난다고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읽어서 뭐 하나 싶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 말씀에 기록 얘기를 꺼냅니다.
읽을 때는 분명히 알았는데 덮으면 사라집니다. 이건 당연한 일에 가깝습니다.
읽는 동안에는 책이 계속 붙잡아줍니다. 앞 내용을 잊어도 다음 쪽이 이어주니까요. 그런데 덮는 순간 그 받침이 없어지죠. 그러면 내가 붙든 것만 남습니다. 대개 많지 않고요.
그래서 기록은 기억력을 보충하는 게 아니라 덮은 뒤에 한 번 더 붙드는 일입니다.
길게 쓰려 하시면 못 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권합니다.
제목과 날짜, 그리고 한 줄. 그게 전부입니다. 한 줄은 줄거리가 아니라 나한테 남은 것을 적으시면 되죠.
좋았다, 지루했다, 이 대목이 계속 생각난다 — 이런 것도 충분합니다. 앞서 책 읽은 걸 올리는 마음을 적었는데, 남에게 보이는 글과 나한테 남기는 줄은 다릅니다. 뒤쪽은 잘 쓸 필요가 없죠.
공책 한 권이면 됩니다. 제일 오래갑니다. 휴대전화 메모. 손이 제일 잘 갑니다. 다 읽고 덮은 자리에서 바로 쓰실 수 있죠. 도서관 앱. 빌린 목록이 자동으로 남습니다. 이걸 모르시는 분이 많은데, 몇 해 치 대출 기록을 보실 수 있는 관이 많습니다. 제목이 생각 안 나실 때 여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책 사진. 표지만 찍어두셔도 됩니다. 제목이 남으니까요.
한 줄로 부족하실 때 쓰는 방법입니다.
옮겨 적기. 마음에 걸린 문장을 그대로 적으시면 됩니다. 생각을 안 적으셔도 되니 부담이 적죠. 쪽수만 적기. 밑줄 대신 쪽수를 적어두시면 나중에 찾기가 쉽습니다. 앞서 도서관 책에는 밑줄을 못 긋는다고 적었는데, 그때 쓰는 방법이고요. 한 달에 한 번 몰아보기. 그달 목록을 죽 보시면 뭘 읽고 있었는지가 보입니다.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기록하려고 읽기 시작하면 읽기가 숙제가 됩니다. 적으려고 밑줄을 찾게 되죠. 그러면 그냥 흘러가는 읽기의 몫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안 적어도 되는 책을 따로 두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재미로 읽는 책은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남은 게 없어도 그 시간이 없던 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때부터 다른 게 보입니다.
내가 어떤 책을 고르는 사람인지가 나오죠. 앞서 안 읽고 쌓아둔 책 더미에서도 같은 얘기를 했는데, 목록은 취향의 기록입니다. 다음 책을 고르실 때 이게 제일 정확한 참고가 되고요.
읽은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다만 읽었다는 사실은 남겨둘 수 있다.
앱에서 지난 대출 목록을 뽑아드렸습니다.
쭉 보시더니 아, 이걸 읽었지 하시더군요. 기록은 이미 있었고 보는 법만 모르셨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