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힘든 한 해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장 좋았던 하루 이야기를 할 때만은 눈빛이 달랐죠. 그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하셨습니다. 힘든 날들은 빨리 잊고 싶은데 그날만큼은 계속 붙잡고 싶다고요.
그 마음이 니체의 한 문장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이 문장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두 번 나옵니다. 제3부 「또 다른 춤의 노래」 끝에, 그리고 제4부 「몽유병자의 노래」에서 더 길게 울리죠. 한밤중 종소리에 맞춰 차라투스트라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세계는 깊다. 낮이 생각한 것보다 더 깊다. 깊은 것은 세계의 고통. 기쁨은 마음의 고통보다 더 깊다. 고통은 말한다, 사라져라! 그러나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 깊고 깊은 영원을!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 손님이 힘든 날들을 잊고 싶다고 한 것처럼요. 고통은 늘 끝을 원하죠.
반대로 기쁨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순간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고, 한 번 더 겪고 싶죠.
앞서 영원회귀를 적었습니다. 지금의 삶을 똑같이 다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이었죠. 니체는 이 노래에서 그 물음에 답합니다. 진짜 기쁨을 한 번이라도 겪은 사람은, 그 기쁨을 위해 모든 고통까지 다시 원하게 된다고요. 기쁨과 고통은 서로 얽혀 있으니까요.
니체가 고통을 가볍게 여긴 건 아닙니다. 고통은 깊다고 분명히 말하죠. 다만 기쁨은 그보다 더 깊다고 했습니다. 앞서 회복하는 자 뜻을 적었는데, 쓰러졌다 일어난 차라투스트라가 마침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기쁨의 노래였습니다.
고통은 문을 닫으려 하고 기쁨은 문을 열어 두려 한다. 열어 둔 문으로 세계의 깊이가 들어온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하루가 제가 무엇을 기뻐하는 사람인지 알려 줍니다. 그 기쁨을 오늘 조금 만들어 보십시오. 같은 하루는 못 돌아가도, 비슷한 조각은 만들 수 있죠. 고통의 날들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앞서 니체 구원에 대하여 뜻을 적었는데, 그 날들도 기쁨과 얽힌 제 이야기의 일부니까요.
그 손님은 그 좋았던 하루에 함께했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날로 돌아갈 순 없어도 비슷한 하루를 다시 만들어 볼 수는 있겠다고요.
고통의 날도 기쁨의 날도 다시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영원을 원하게 만드는 기쁨을 하나씩 늘려 가며, 그 깊이로 제 삶을 긍정하는 쪽을 고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