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온 손님이 계셨습니다. 친구가 계속 말이 없자, 손님은 열람석에서 내내 친구 눈치를 살피셨죠. 책은 한 쪽도 넘기지 못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는 그냥 졸렸던 거였죠. 손님이 크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또 제 탓인 줄 알았어요.
분위기를 읽는 데 익숙합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 기분을 살피며 자란 분들이 많죠. 그 감각이 늘 켜져 있습니다. 설명이 없으면 저를 의심합니다. 상대가 왜 기분이 안 좋은지 모르면, 가장 가까운 원인인 저부터 떠올리게 되더군요. 좋은 분위기를 지키는 게 제 몫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나빠지면 제 일을 못 한 것 같죠. 갈등이 무섭습니다. 상대가 화났을까 봐 미리 움츠러들게 됩니다.
앞서 미움받을까 불안한 마음과 남에게 맞추는 성격을 적었는데, 이 마음은 그 둘과 뿌리가 닿아 있습니다.
사람의 기분은 수많은 이유로 바뀝니다. 잠을 못 잤거나, 배가 고프거나, 다른 일로 걱정이 있거나요. 그 가운데 제가 원인인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남의 기분을 다 제 책임으로 지면, 남의 날씨까지 제가 짊어지는 셈이 되죠. 그건 아무리 애써도 다 감당할 수 없는 짐입니다.
앞서 낙타 사자 아이를 적었습니다. 낙타는 지라는 짐을 다 지고 사막으로 가죠. 그 짐이 누구 것인지 묻지 않고요.
남의 기분까지 짊어지는 마음도 그런 낙타의 마음일 겁니다. 니체는 그 낙타가 언젠가 "그 짐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죠.
남의 하늘에 낀 구름까지 네가 걷어 내려 하지 마라. 네 하늘을 맑게 두는 것이 곁에 선 이에게도 볕이 된다.
확인할 수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짐작보다 한 번 묻는 게 훨씬 가볍죠. 다른 이유를 떠올려 보십시오. 잠, 배고픔, 다른 걱정. 저 말고 다른 원인 세 가지를요. 상대의 기분과 제 하루를 떼어 놓으십시오. 상대가 기분이 안 좋아도 제 할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제가 원인이라면, 그때 사과하면 됩니다. 미리 다 짊어질 필요는 없죠.
그 손님은 그날 남은 시간 동안 책을 꽤 넘기셨습니다. 친구는 옆에서 졸다가 깨서 같이 웃었고요. 나가시며 말씀하셨죠. 다음엔 그냥 물어봐야겠다고요.
남의 기분을 살피는 감각은 아마 계속 켜져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감각을 짐이 아니라 배려로만 쓰고, 남의 날씨 대신 제 하늘부터 돌보는 쪽으로 저를 세워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