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먼저 자기 학교를 말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고는 그날 내내 말수가 줄었다고 하시더군요.
상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도착했습니다.
열등감과 자격지심은 둘 다 내가 아래에 있다고 느끼는 상태입니다.
둘 다 아프고, 둘 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로 묶어 쓰이는데, 그 판정이 어디서 왔는지가 다릅니다.
열등감은 실제로 비교가 있었을 때 생깁니다.
같은 자리에서 누가 더 잘하고, 결과가 나오고, 순위가 매겨집니다. 밖에서 온 판정입니다. 그래서 열등감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가 맞는지 따져볼 수도 있고요.
열등감은 사실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 비교가 공정했는지, 같은 조건이었는지 보시면 됩니다.
자격지심은 아무도 판정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판정한 상태입니다.
상대는 학교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이미 그 순위가 있어서, 그 주제가 나오는 것만으로 판정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상대가 안 한 말이 들립니다.
자격지심은 확인이 안 됩니다. 상대가 아무 말도 안 했으니 따질 대상이 없거든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때 상대가 실제로 무슨 말을 했습니까?
이걸 물으면 대개 상대가 한 말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안 했으니까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열등감은 그 자리를 벗어나면 잦아듭니다. 비교가 끝났으니까요. 그런데 자격지심은 안에서 만들어지니 어디를 가도 따라옵니다. 그 주제만 나오면 다시 시작되죠.
그리고 자격지심은 상대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안 물었는데 먼저 밝히면 상대는 그게 중요한 문제인가 하고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없던 비교가 그때 생깁니다.
열등감 쪽이면 할 일은 그 비교가 맞았는지 보는 것입니다. 조건이 달랐으면 그 판정은 그만큼 깎으시면 됩니다.
자격지심 쪽이면 할 일은 자신감을 키우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실제로 한 말을 그대로 적어보는 것입니다. 적어놓으면 대개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 빈칸을 보시면 그 판정이 어디서 왔는지가 보이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아프신 것은 같습니다. 상대가 한 말을 적어보는 것으로 갈립니다.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