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대화방에서 자기 말 다음에만 대화가 끊긴다고 세어보신 분이 계셨습니다. 실제로 세어보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행동이 정확했다고 봅니다. 세어본다는 건 증거를 찾는 일이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면 증거가 필요합니다.
다만 그다음이 갈립니다. 그게 소외감인지 열등감인지에 따라 필요한 것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외감은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무리 안에 내가 들어갈 칸이 없습니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잘해도 칸이 없으면 그대로입니다.
열등감은 순위가 낮은 것입니다. 칸은 있습니다. 나도 그 안에 있습니다. 다만 아래쪽에 있습니다.
둘 다 모임에서 나오고 둘 다 아프지만, 하나는 포함의 문제이고 하나는 서열의 문제입니다.
열등감이라고 적으면 사람은 대개 더 잘하려고 합니다. 실력을 올리면 순위가 올라가니 방향이 맞습니다.
그런데 소외감인데 열등감으로 적으면 여기서 어긋납니다. 아무리 잘해도 안 나아집니다. 칸이 없는 게 문제였는데 실력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잘해도 안 되는 자기를 보면서 결론을 하나 더 잘못 냅니다. 내가 부족해서라고요.
반대로 열등감인데 소외감으로 적으면 나갈 생각부터 합니다. 자리가 없다고 판단했으니 떠나는 게 맞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자리는 있었으니, 나가고 나서도 같은 마음이 다음 모임에서 또 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지금보다 훨씬 잘하게 되면 달라지겠습니까?
여기서 잘 안 갈리시면 하나 더 보시면 됩니다. 그 무리 안에 나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서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고, 없으면 칸 밖에 있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제가 무리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제 영역이 아닙니다.
대신 이름을 하나 더 정확하게 붙이겠습니다. 칸이 없다는 건 대개 나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그 무리에 관한 정보입니다. 모임마다 칸의 개수와 모양이 다릅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칸이 없고 어떤 자리에서는 있습니다.
이걸 아는 게 왜 중요하냐면, 소외감은 자기 평가로 잘못 번역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칸이 없었다는 사실을 내가 부족했다는 결론으로 바꿔 적는 순간, 정보 하나가 판정 하나로 둔갑합니다.
열등감 쪽이면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에서 아래인지 한 줄로 좁히시면 됩니다. 대개 전부가 아니라 한두 가지입니다.
소외감 쪽이면 할 일은 세어보는 것입니다. 그 대화방 말고 다른 자리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한 자리에서만 그렇다면 그 자리의 정보이고, 모든 자리에서 그렇다면 그때는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세어본 그분은 한 자리에서만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건 그 방의 정보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모임에서 마음이 상하셨다면 하나만 물어보시죠. 훨씬 잘하게 되면 달라지겠습니까.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