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지 두 해가 됐는데 도움을 청할 사람 이름을 한 명도 못 적으신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그걸 두고 독립적이라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자립을 가리키는지 고립을 가리키는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두 이름은 겉모습이 같거든요.
자립한 사람과 고립된 사람은 밖에서 보면 구별이 안 됩니다.
둘 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결정하고,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대개 앞쪽으로 봐줍니다. 씩씩하다는 말도 듣죠.
갈리는 것은 그 상태를 내가 골랐느냐입니다.
자립은 기댈 수 있는데 안 기대는 상태입니다.
부를 사람이 있고, 부르면 오고, 부르면 도와줍니다. 그걸 알면서 이번 건은 혼자 하기로 정한 겁니다. 선택지가 있는 상태에서 하나를 고른 것이지요.
그래서 자립한 사람은 필요할 때 부릅니다. 부르는 일이 자립을 깨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고립은 기댈 데가 없어서 안 기대는 상태입니다.
선택지가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뿐인 걸 고르고 나서도 사람은 그걸 선택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야 견딜 만해지니까요. 이 이름 붙이기가 고립을 오래 끌게 만듭니다.
감정으로는 안 갈립니다. 숫자로 보셔야 합니다.
세 칸이 채워지는데도 혼자 지내신다면 자립입니다. 세 칸이 다 비어 있으면 고립입니다. 한 칸도 못 적으셨다면, 씩씩한 게 아니라 끊긴 것일 수 있겠지요.
이름이 틀리면 할 일이 반대로 갑니다.
고립인데 자립이라고 부르면 더 혼자 있게 됩니다. 잘하고 있는 줄 아니까 방향을 안 바꾸는 겁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면 명단은 더 줄어들어 있습니다.
반대로 자립인데 고립이라고 부르면 불필요하게 불안해집니다. 부를 사람이 있는데도 외롭다고 여기게 되니까요. 이건 명단만 확인하면 바로 풀립니다.
자립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 겁니다.
고립 쪽이면 할 일은 한 칸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아는 사람 중에 한 명한테 작은 것을 부탁해보는 것입니다. 큰 걸 부탁하면 거절이 무서워서 못 하니까요. 작은 것부터 해야 명단이 다시 생깁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혼자인 건 같습니다. 그 앞에 골랐느냐 남았느냐만 세워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