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를 끝까지 읽은 손님이 반납하며 고개를 갸웃하셨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주인공 집에 손님만 잔뜩 오고 끝나더라고요.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정확하게 읽으셨습니다. 제4부는 정말 손님들 이야기죠. 다만 그 손님들이 누구인지가 핵심입니다.
제4부에서 나이 든 차라투스트라는 산속 동굴에 머물고 있습니다. 거기로 한 사람씩 찾아오죠. 니체는 그들을 "더 높은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싫증 난 두 왕, 한 가지만 파고들다 지친 학자, 남을 홀리며 살아온 마술사, 차라투스트라를 오래 따라다닌 그림자 같은 이들이죠.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제 시대의 가치에 절망한 사람들입니다. 남들처럼 살 수 없어서, 혹은 남들처럼 사는 게 견딜 수 없어서 산으로 올라왔죠.
앞서 마지막 인간을 적었습니다. 작은 편안함에 만족하며 눈을 깜빡이는 사람이었죠. 더 높은 인간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편안함에 만족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절망할 줄 안다는 건 더 나은 것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그들을 높다고 불렀죠.
이야기는 여기서 뒤집힙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을 반기고 함께 만찬을 열지만, 끝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내가 기다린 이들이 아니다.
그는 「더 높은 인간에 대하여」에서 그들에게 당부합니다. 웃음을 배우라고, 춤추는 법을 배우라고. 그들은 높은 것을 알았지만 너무 무거웠던 겁니다. 절망은 아는데,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가벼움이 없었죠.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동굴을 나섭니다. 손님들을 뒤로하고, 아침 해처럼 힘차게 제 일을 향해 가죠.
절망을 아는 자는 높다. 그러나 절망 위에서 웃을 줄 아는 자만이 멀리 간다.
지금이 답답하다면, 그건 더 나은 걸 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괴로움은 높이의 증거이기도 하죠. 그래도 거기 머물지는 마십시오. 절망을 오래 끌어안는 건 무거움을 키울 뿐입니다. 가벼워지는 연습을 하십시오. 웃을 일 하나, 몸을 움직일 일 하나. 차라투스트라가 손님들에게 권한 것도 그거였습니다.
설명을 들으신 손님이 웃으셨습니다. 그럼 그 손님들이 꼭 요즘 저 같네요, 하시면서요. 답답하긴 한데 웃을 줄을 모른다고.
저도 그 동굴의 손님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거기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제 걸음으로 동굴 밖으로 나서는 쪽을 고르겠습니다. 아침은 제가 걸어 나가야 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