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객잔 주인으로서 좀 억울한 장면이 있어. 나그네가 외딴 객잔에 묵었는데, 주인이 술에 약을 타. 잠든 사이에 짐을 털고, 심하면 목숨까지 노려.
이런 객잔을 무협에선 흑점이라고 불러. 검은 가게라는 뜻이지. 겉으로는 평범한 객잔인데 속은 도적 소굴인 거야.
흑점은 대개 외딴 데 있어. 사람 드문 산길, 사막 길목, 큰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데.
거기서 날이 저물면 나그네는 그 객잔 말고 갈 데가 없어. 역참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관도에 쉬어 가는 자리가 있다고. 흑점은 그런 자리를 흉내 내는 함정이야. 지친 나그네가 마음을 놓는 순간을 노리는 거지.
무협에서 흑점을 알아보는 단서가 있어. 주인이 너무 친절해.
방값을 싸게 해주고, 술을 공짜로 주고, 이것저것 챙겨줘. 그러면 노련한 강호인은 의심해. 무협 차 얘기할 때 상대가 따라준 차를 바로 안 마신다고 했잖아. 흑점에서도 그래. 공짜 술이 제일 비싼 법이야.
흑점 장면은 대개 이야기의 시작이야.
주인공이 흑점에 묵었다가 위기에 빠지고, 거기서 다른 나그네를 만나고, 같이 빠져나와. 그 사람이 평생 동료가 되기도 해. 아니면 흑점 주인이 사실 어떤 큰 조직의 끄나풀이라 더 큰 음모로 이어지기도 하고.
객잔에서 이 얘기를 하니까 손님 하나가 장난을 쳤어. 국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냄새를 맡고, 숟가락으로 휘저었어. 다들 웃었지.
그러고는 "이 집은 괜찮다" 하고 단숨에 들이켰어. 나는 좀 억울했지만 웃었어. 객잔 주인 고수 얘기 했을 때 주인이 고수인 반전을 적었는데, 흑점은 그 반대 반전이야. 좋은 주인인 줄 알았는데 나쁜 주인인 거지.
흑점 장면 중에 기억나는 거 있으면 들려줘. 우리 객잔은 그런 데 아니라는 거 보여주려고 국 한 그릇 더 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