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을 펼치던 손님의 손끝에 노란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들은 지적을 적어 둔 거라고 하시더군요. 같은 주에 칭찬도 여러 번 들었는데, 그건 하나도 안 적었다고요.
적어 둔 쪽이 한마디뿐이라는 게 오히려 많은 걸 말해 줬습니다.
이건 한 사람의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대체로 나쁜 소식에 더 크게 반응하도록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나왔죠. 심리학에서는 부정성 편향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위험을 먼저 알아채는 쪽이 살아남기 유리했다는 설명이 흔히 따라붙습니다. 칭찬은 놓쳐도 큰일이 없지만, 경고를 놓치면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싫은 말이 오래 남는다고 해서 제가 유독 약한 건 아닙니다. 원래 그렇게 기울어진 저울이죠.
몇 가지가 겹칩니다.
곱씹게 됩니다. 칭찬은 한 번 듣고 끝나는데, 지적은 머릿속에서 여러 번 다시 재생되죠. 나에 대한 판결처럼 들립니다. "이 부분이 아쉽다"가 "너는 부족하다"로 번역되어 들어옵니다.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넘어간 말일수록 오래 남더군요.
말을 원래 크기로 되돌려 보십시오. 들은 말을 그대로 적고, 거기 없는 말을 제가 덧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봅니다. 말한 사람의 자리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날 그 사람의 기분, 그 사람의 기준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쓸 것만 남기십시오. 지적 안에 쓸 만한 게 있다면 그것만 옮겨 적고 나머지는 버리는 거죠. 좋은 말도 똑같이 적어 두십시오. 저울이 원래 기울어 있다면, 반대쪽에 일부러 무게를 올려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남이 던진 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너다. 쓸 만한 돌은 디딤돌로 놓고, 나머지는 길가에 두어라.
그 손님은 얘기를 마치고 포스트잇을 한참 보시더니, 뒷면에 같은 주에 들은 칭찬 두 개를 적으셨습니다. 앞뒤가 같은 크기가 되니 좀 낫다고 하시더군요.
싫은 말이 남는 건 막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말을 얼마나 오래, 어떤 크기로 들고 다닐지는 제가 고를 수 있겠죠. 저는 쓸 만한 것 하나만 챙기고, 나머지 자리는 제가 원하는 말로 채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