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다가오면 카페 메뉴를 우리말로 하면 뭐냐고 물어보시는 손님이 있어요. 메뉴판을 다시 보면 정말 거의 다 외래어예요. 아메리카노, 라떼, 에스프레소, 콜드브루. 한글로 적혀 있을 뿐 우리말은 거의 없어요.
어느 밤에 단골 손님이 뉴스에서 한글날 특집을 보고 오셨대요. 주문하시면서 갑자기 물으셨어요. "아메리카노는 우리말로 뭐예요?"
저도 순간 말이 막혔어요. 공식적인 우리말 이름이 있는지 저는 몰라요. 그래서 둘이 메뉴판을 보면서 이름을 지어 봤어요. 아메리카노는 "물 탄 진한 커피", 라떼는 "우유 커피". 그러다 에스프레소에서 둘 다 포기했어요. "작고 진한 커피"는 너무 길더라고요.
제가 알기로는 이래요. 커피 메뉴 대부분이 이탈리아에서 왔어요. 에스프레소, 라떼, 카푸치노, 마키아토가 다 이탈리아 말이에요. 아메리카노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식으로 묽게 마시는 커피를 부른 말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건 번역이라기보다 이름을 그대로 들여온 거예요. 김치를 외국에서도 김치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메뉴판을 다시 보니 우리말이 아예 없진 않았어요.
커피만 외래어고, 차 쪽으로 가면 우리말이 많아요. 손님이 그걸 보시고 "커피는 손님이고 차는 주인이네요" 하셔서 웃었어요.
그날 이후로 메뉴판 아래에 작게 설명을 붙여 봤어요. 라떼 밑에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 아메리카노 밑에 "에스프레소에 물을 더한 커피"처럼요.
그랬더니 어르신 손님들 주문이 조금 편해지셨어요. 이름은 못 바꿔도 설명은 우리말로 할 수 있더라고요. 이건 제 작은 고집이에요.
이름이 어디서 왔든 잔은 우리 동네에서 비워져요. 오늘 잔에도 편하게 아무 이름이나 붙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