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서 신청서를 쓰시던 손님이 펜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제 글씨가 너무 엉망이라서요, 하시면서요. 휴대폰으로 신청하겠다며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으셨죠. 얼핏 본 글씨는 조금 삐뚤었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었죠.
어릴 때 지적을 받았습니다. 글씨가 엉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오래 남죠. 앞서 싫은 말이 오래 남는 이유를 적었는데, 글씨에 대한 한마디도 그렇더군요. 글씨가 저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글씨체로 성격을 짐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더 신경이 가더군요. 쓸 일이 줄었습니다. 화면으로만 쓰다 보니 손이 굳고, 쓸수록 더 삐뚤어지는 것 같습니다. 예쁜 글씨와 비교합니다. 남의 반듯한 글씨 옆에 제 글씨를 두면 작아지더군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오래 일하며 본 것이 있습니다. 반납된 책 사이에서 나오는 손글씨 메모들이요. 앞서 반납된 책에서 나오는 물건을 적었는데, 그 메모들 가운데 반듯한 글씨는 드물었습니다. 그래도 하나같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죠.
손글씨는 반듯함보다 그 사람다움이 남는 글자입니다. 화면 글자는 누가 써도 같지만, 손글씨는 그 사람만의 모양이니까요.
앞서 피로 써라 니체 뜻을 적으며, 니체가 제 삶으로 쓴 글만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손글씨는 그 말이 가장 글자 그대로 들어맞는 글일지도 모릅니다. 제 손이 지나간 자국이 그대로 남으니까요.
또 앞서 사랑도 배워야 한다 니체 뜻을 적었는데, 니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했죠. 제 글씨와 친해지는 것도 그 배움의 작은 한 조각일 겁니다.
반듯한 글씨는 읽히고, 그 사람의 글씨는 기억된다.
천천히 쓰십시오. 서두르면 더 흐트러집니다. 속도를 늦추면 같은 글씨도 정돈되죠. 짧은 메모부터 써 보십시오. 장보기 목록, 책 사이 메모 같은 것부터요. 앞서 읽으면서 메모하는 요령을 적었습니다. 읽히면 충분하다고 정하십시오. 예쁠 필요는 없겠죠. 상대가 읽을 수 있으면 되죠. 필사를 해 보십시오. 좋아하는 문장을 옮겨 적다 보면 손이 풀립니다. 앞서 필사책이 많아진 이유를 다룬 글이 있습니다.
몇 주 뒤 그 손님이 대출대에 쪽지를 두고 가셨습니다. 지난번 신청한 책이 들어와서 고맙다는 짧은 손글씨였죠. 여전히 조금 삐뚤었지만, 그래서 더 그분 같았습니다.
손글씨가 부끄러운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반듯함보다 제다움을 믿고, 손으로 쓴 몇 줄로 제 마음을 건네는 일을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