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책 표지를 보며 웃으셨습니다. "어떻게 망치로 철학하는가." 다 때려 부수자는 책이냐고요. 그러고는 서문 첫 쪽을 펼치셨는데, 거기서 손이 멈추더군요.
이 망치는 생각과 조금 다른 망치입니다.
니체의 말년 책 『우상의 황혼』의 부제가 바로 이것이죠. "어떻게 망치로 철학하는가."
이 부제만 보면 무엇이든 깨부수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니체가 거친 말을 많이 한 사람이니 더 그렇겠죠.
그런데 서문을 읽으면 그림이 바뀝니다. 니체는 오래 떠받들어진 생각들을 망치로 두드려 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망치를 소리굽쇠에 빗대죠.
소리굽쇠는 무엇을 부수는 도구가 아닙니다. 두드려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듣는 도구죠. 니체는 크고 당당해 보이던 것들이 두드려 보면 속이 빈 소리를 낸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망치는 철거용보다는 진찰용에 가깝습니다. 의사가 가슴을 두드려 속을 듣는 것처럼요.
니체가 겨눈 건 그 시대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생각들이었습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이 책에서 가져올 것은 방법이겠죠.
오래 믿어 온 말. "원래 그런 거야" 하고 넘겨 온 생각이요. 남에게서 그대로 받아 온 기준.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본 적 없는 것들입니다. 제가 저에게 붙인 이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도 한 번 두드려 볼 만하죠.
두드려라. 소리가 맑으면 지켜라. 소리가 비었으면 그 앞에 더는 무릎 꿇지 마라.
부수는 사람은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깨면 끝이니까요. 두드리는 사람은 듣고 나서 고릅니다. 속이 찬 것은 남기고, 빈 것만 내려놓죠.
이 차이가 큽니다. 망치를 들었다고 다 허무는 게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 고르는 일이 시작되는 겁니다. 니체가 끝내 긍정의 철학자로 불리는 까닭도 여기 있겠죠.
그 손님은 서문을 다 읽으시고는 웃음기를 거두셨습니다. 부수자는 얘기가 아니라 들어 보자는 얘기였네요, 하시면서요. 그 책을 빌려 가셨습니다.
망치를 들 일은 생각보다 자주 옵니다. 저는 남이 건네준 생각을 그대로 떠받들기보다, 한 번씩 두드려 보고 남길 것을 제가 고르겠습니다. 그렇게 남긴 것들로 제 기둥을 세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