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쪽만 손때가 새까만 책이 반납된 적이 있습니다. 본문은 거의 빳빳했어요. 여러 사람이 해설만 읽고 돌려준 겁니다.
저는 그 책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더군요.
서문에는 대개 왜 이 책을 썼는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읽으면 방향이 잡히죠. 어디로 가는 책인지 알고 출발하는 셈입니다.
다만 서문이 어려워서 1장까지 못 가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럴 땐 건너뛰고 본문으로 가셔도 됩니다. 서문은 안내판이지 입장권이 아니거든요.
뒤에 붙은 해설은 성격이 다릅니다. 그건 이미 읽은 사람이 정리해둔 요약이에요. 먼저 읽으면 편하죠. 대신 내가 무엇을 느꼈을지가 지워집니다.
해설을 먼저 본 사람은 본문에서 해설이 말한 것만 찾게 되더군요. 답을 보고 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합니다.
해설만 읽고 반납하는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그것도 방법이죠. 다만 그렇게 읽은 책은 남에게 설명할 수는 있어도 내 안에서는 잘 안 굴러갑니다.
남이 정리해둔 길만 밟는 자는, 자기 발이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 영영 모른다.
서문은 먼저, 해설은 나중에요. 이 순서만 지켜도 읽는 경험이 꽤 달라집니다.
고전이나 번역서는 해설이 본문만큼 길 때도 있어요. 그럴수록 나중에 보시는 게 낫습니다. 내가 어디서 헤맸는지 알고 나서 봐야 해설이 실제로 쓸모가 생기거든요.
옮긴이의 말도 비슷합니다. 그 안에는 이 책이 왜 지금 여기로 왔는지가 적혀 있어요. 본문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읽어두면 책의 위치가 보이더군요.
저는 다 읽고 서문을 한 번 더 봅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던 문장이 그때는 다 읽히더군요.
같은 페이지가 달라 보이면 그 사이에 내가 움직인 겁니다. 그 이동은 해설이 대신 해주지 못해요. 어디서부터 읽을지는 결국 내가 정하는 순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