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옮길 데가 있다면서 짐 얘기를 하는데, 버릴 게 뭔지를 세 번쯤 세다가 그만두더라고.
세다가 그만두는 게 제일 힘들대. 나는 그게 좀 걸렸어.
단골 얘기로는 다들 그렇대. 짐 때문에 못 옮긴다는 거지.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왜 그런지는 몰라. 객잔에서 본 것만 적을게.
이게 재밌는 대목이야. 무협 읽어보면 인물들 짐이 아주 적어.
행낭. 등에 지는 자루 하나야. 그 안에 갈아입을 옷, 비상용 마른 음식, 노잣돈, 상처 싸맬 천. 그게 다야. 병기는 손에 들거나 등에 매고.
이게 검소해서가 아니야. 더 들면 못 움직이거든. 경공을 쓰려면 가벼워야 하고, 하루에 백 리를 가려면 무거우면 안 되지.
여기가 핵심이야. 무림인이 물건이 없었던 게 아니야. 안 들고 다닌 거지.
은표 얘기를 어제 했잖아. 백 냥을 지고 못 다니니까 종이로 바꾼 거라고. 같은 원리야. 맡길 데가 있으니까 몸이 가벼운 거야.
이게 지금이랑 갈리는 자리인 것 같더라고.
무림인은 사문이 있고 전장이 있고 표국이 있었어. 물건을 흩어놓을 데가 있었지. 그런데 그런 데가 없으면 전부 자기 방에 쌓아야 해. 그러면 방이 곧 창고가 되고, 창고가 무거우니까 못 움직이는 거야.
되판다는 얘기를 전에 했잖아. 쓰던 걸 계속 되파는 사람은 정을 안 붙이는 게 아니라 붙일 자리가 없는 거라고. 이것도 같은 얘기지.
한쪽으로만 몰지는 않을게. 무림인도 못 버리는 게 하나씩 있었어.
병기야. 강호에선 병기를 안 팔았다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그게 이력서라서. 짐을 아무리 줄여도 그건 지고 다녔지.
그러니까 다 버리는 게 답이 아니야. 하나는 남기고 나머지를 줄이는 거지. 무협에서 짐이 가벼운 인물이 멋있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뭐가 중요한지를 정해놨기 때문이야.
그 손님한테 나는 이렇게 말했어. 버릴 걸 세지 말고 못 버릴 걸 먼저 세보라고.
버릴 걸 세면 끝이 안 나. 다 아깝거든. 그런데 못 버릴 걸 세면 대개 몇 개 안 나와. 그러고 나면 나머지가 좀 가벼워 보이더라.
무림인이 행낭 하나로 다닌 게 독해서가 아니야. 뭘 지고 갈지를 먼저 정했으니까 나머지를 놓을 수 있었던 거지.
뭘 못 버리겠는지 하나만 말해봐. 그거부터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