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자기가 잘 아는 걸 설명하다가 중간에 말을 흐리더라고. 그러고는 화제를 돌렸어.
나중에 물어보니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래. 다 말하자니 아깝고 안 말하자니 인색해 보이고.
단골 얘기로는 요새 그 고민이 많대.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왜 그런지는 몰라. 객잔에서 본 것만 적을게.
이게 무협의 오래된 주제야. 비전이라는 말이 그거지.
문파에만 전해지는 무공. 밖에 안 내보내는 거. 장경각에 있는 것도 아무한테나 안 열어주고, 사부가 제자를 골라서 하나씩 넘겨.
이걸 인색하다고 볼 수도 있잖아. 그런데 무협은 여기에 이유를 붙여놨어.
여기가 핵심이야. 무협에서 비전을 안 넘기는 이유가 셋이야.
세 개 다 인색함이 아니라 책임 얘기야. 준 뒤에 벌어질 일까지 주는 쪽이 지게 되니까.
무협에서 가르치는 방식이 이걸 그대로 보여줘. 한 번에 다 안 줘.
지금 익힐 만큼만 주고, 그게 되면 다음 걸 줘. 구결을 통째로 넘기지 않는 게 그래서야. 무공 비급이 항상 반쪽인 것도 이야기 장치이기 전에 가르치는 방식 자체가 원래 그런 거야.
그러니까 무림의 선은 주느냐 마느냐가 아니었어. 어느 순서로 얼마나 주느냐였지. 이게 아까 그 손님 고민이랑 결이 다르잖아. 손님은 전부냐 아무것도 아니냐로 놓고 있었거든.
한쪽으로 몰지는 않을게. 무협에도 다 열어주는 인물이 나와.
그런데 그 결과가 대개 안 좋아. 받은 놈이 감당을 못 하거나, 받고 나서 안 고마워하거나. 너무 쉽게 얻은 건 값을 안 쳐준다는 게 이 장르가 반복해서 하는 말이야.
장경각 노인이 한 권만 꺼내주는 게 그래서지. 다 보여주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 익히거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말하다 아까워지면 그건 나쁜 마음이 아니야.
그게 값이 나가는 거라는 뜻이잖아. 아무것도 아니면 아깝지도 않지. 그러니까 아깝다는 느낌이 들면 그건 오히려 그 자리에서 확인된 정보야.
다만 전부냐 아무것도 아니냐로 놓으면 답이 안 나와. 무림처럼 지금 저 사람이 쓸 수 있는 만큼으로 잘라보면 대개 풀리더라고.
어디까지 말할지 모르겠으면 여기서 정리해봐. 듣는 건 내가 할게. 소리 내서 말하다 보면 선이 어디쯤인지 대개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