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웃으며 고백하셨습니다. 젊은 직원이 대출 앱 쓰는 법을 알려 줬는데, 원래 하던 대로 하겠다고 딱 잘랐다고요. 그런데 집에 가서 몰래 따라 해 봤더니 편하더라고. 다음에 그 직원 보기가 민망하다고 하시더군요.
경험이 쌓였습니다. 오래 해 온 방식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죠. 그러니 바꿀 이유를 못 느낍니다. 새로 배우는 게 피곤합니다. 익숙한 길이 편하니까요. 바꾸려면 힘이 듭니다.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습니다. 방식을 바꾸면 그동안 해 온 게 틀렸다는 뜻 같죠. 남에게 배우는 게 어색합니다. 특히 저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울 때 그렇더군요.
이 둘은 겉보기엔 비슷합니다. 다만 소신은 근거가 바뀌면 생각도 바꿀 수 있고, 고집은 근거가 바뀌어도 그대로라는 차이가 있죠. 앞서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을 때를 다룬 글이 있는데, 그 순간을 견디는 힘이 고집과 소신을 가릅니다.
니체는 굳어 버린 생각을 늘 경계했습니다. 앞서 망치로 철학한다는 뜻을 적었는데, 오래 떠받든 생각을 두드려 보라는 말이었죠.
니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생각도 마찬가지라고요. 『아침놀』의 짧은 글에서, 생각을 바꾸지 못하게 된 정신은 더 이상 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죠.
허물을 벗는 뱀만이 자란다. 어제의 생각을 벗을 줄 아는 자만이 내일의 생각을 입는다.
"원래 이렇게 해"를 들으면 이유를 물어보십시오. 제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요. 작은 것부터 바꿔 보십시오. 늘 가던 길 대신 다른 길, 늘 쓰던 방식 대신 새 방식 하나. 어린 사람에게 배우는 걸 즐기십시오. 그건 지는 게 아니라 넓어지는 거죠. 바꿨다고 말하십시오. "해 보니 좋더라." 그 한마디가 관계도 부드럽게 합니다.
다음에 오셨을 때 그 손님은 그 직원에게 먼저 말을 거셨습니다. 앱이 편하더라고, 고맙다고요. 직원이 활짝 웃더군요. 손님은 그날 앱으로 다른 기능도 하나 더 배워 가셨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생각은 굳기 쉽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 생각을 가끔 두드려 보고, 벗어야 할 허물이 있으면 제 손으로 벗으며 계속 자라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