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대출 기록을 한참 들여다보셨습니다. 대학 시절에 빌렸던 책을 다시 찾던 중이었죠. 오래된 기록을 보시더니 중얼거리셨습니다. 이때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목소리에 그리움과 아쉬움이 반씩 섞여 있었습니다.
힘든 것은 흐려지고 좋은 것은 남습니다. 기억은 그렇게 다듬어지더군요. 그때도 불안하고 막막했을 텐데, 지금 떠올리면 그 부분은 희미하죠.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절은 이미 끝난 이야기라 안전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끝날지 모르니 불안하고요. 그때의 가능성이 그립습니다. 그 손님 말처럼,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느낌이요. 실은 그 시절보다 그 열린 느낌이 그리운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움 자체는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오늘을 깎아내릴 때죠. 지금이 그때보다 못하다고 계속 비교하면, 오늘은 늘 진 쪽이 됩니다.
앞서 지난 일이 자꾸 떠오를 때를 적었는데, 그건 후회의 장면들이었죠.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은 반대로 좋은 장면에 붙잡히는 일입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오늘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는 점은 같더군요.
앞서 영원회귀를 적었습니다. 지금의 삶을 똑같이 다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이었죠.
"그때가 좋았다"는 마음 앞에서 이 물음을 뒤집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을 십 년 뒤에 "그때가 좋았다"고 떠올리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나간 날을 부러워하지 마라. 그날의 너도 그날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날의 네가 만든 것이다.
그때 무엇이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십시오. 막연한 그리움보다 이름 붙은 그리움이 쓸모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찾으십시오. 그때 읽던 책, 그때 걷던 길, 그때의 무모함 한 조각이요. 오늘의 좋은 것 하나를 적어 두십시오. 언젠가 "그때"가 될 오늘의 장면을 미리 모아 두는 겁니다.
그 손님은 그 시절 빌렸던 책 한 권을 다시 빌려 가셨습니다. 두 주 뒤 반납하시며 말씀하셨죠. 다시 읽으니 그때와 다른 데서 밑줄을 긋고 싶었다고요. 그것도 나쁘지 않더라고 하시더군요.
그때는 그때대로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지나간 시절을 부러워하는 대신, 언젠가 그리워할 오늘을 제 손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