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치기하던 사람이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두고 온 걸 알고 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순간이 통쾌했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몇 달 붙들고 있던 민원이 마침내 처리됐다는 문자를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분도 통쾌했다고 하셨고요. 두 장면 중 하나는 이름이 다릅니다.
고소함과 통쾌함은 둘 다 속이 시원해지고 웃음이 나는 감정입니다.
어깨가 펴지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시원하다는 점이 같으니 하나로 부르시는 거죠. 그렇다면 둘은 어디서 갈릴까요?
고소함은 미운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며 드는 시원함이고, 통쾌함은 막혀 있던 것이 시원하게 풀릴 때 드는 감정입니다.
고소함은 내가 얄밉게 여기던 사람이 곤란해질 때 옵니다.
내 처지는 그대로입니다. 새치기한 사람이 돌아간다고 내 줄이 빨라지지는 않죠. 시원함의 출처가 상대의 곤란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소함은 말하기가 조금 민망합니다. 남의 일이 잘못된 것을 반기는 것이니까요.
통쾌함은 내 쪽에서 막혀 있던 것이 풀릴 때 옵니다.
민원이 처리됐다는 문자에는 넘어진 사람이 없습니다. 몇 달 동안 막혀 있던 일이 한 번에 뚫렸을 뿐이죠. 통쾌함은 남에게 말해도 민망하지 않습니다. 시원함의 출처가 내 일이니까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계산대 앞의 장면은 첫 번째입니다. 통쾌하다고 부르면 조금 덜 민망해지겠지만, 정확한 이름은 고소함이겠지요.
고소함을 통쾌함이라고 부르시면 그 감정이 실제보다 정당해 보입니다. 그러면 비슷한 장면을 또 기다리게 될 수 있습니다.
고소함이라고 부르시면 그게 내 일이 풀린 게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내 줄은 그대로였다는 것도요. 그러면 그 감정은 그 장면만큼의 크기로 남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속이 시원한 것은 같습니다. 곤란해진 사람이 있는지만 보시죠.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